재일조선인연구
⑥[사회학・에스니시티(ethnicity)] 일상의 복잡성을 복잡한 그대로 기술한다
본문
일상의 복잡성을 복잡한 그대로 기술한다 –민족, 조국, 아이덴티티
‘더블*‘과의 만남
내가 연구를 시작한 가장 큰 계기는 유학동(재일본조선유학생동맹)과의 만남이다. 조선초급학교를 졸업한 이후 중·고등학교는 일본 학교를 다니면서 직접적인 차별을 경험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일상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유학동을 만나서 답답했던 마음이 해방되었고, 막연하게 부정적으로 여기던 나의 배경을 설명해 주는 말들을 접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활동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활동하면서 같은 재일조선인일지라도 타자와 모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특히나 그렇게 생각한 계기는 ‘더블’의 존재였다. 그들은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하에서는 자신의 역사성과 마주하려고 할수록 난처한 상황에 놓인다. 그렇다고 안일하게 ‘더블도 재일조선인에 포함된다’고 규정하는 것은 ‘더블’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역사성을 걸러내지 않고, 민족 차별의 극복과 재일조선인의 주체성 회복에 힘쓰려면 다른 타자끼리의 사회적 통합(공동성) 방식을 재고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라고 생각해 현재의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혼혈인을 가리키는 ‘하프half’ 대신 긍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명칭
민족을 넘어, 민족을 그리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 재일조선인의 국가와 민족을 둘러싼 경험이나 실천에 관해 인터뷰를 비롯한 질적 조사를 통해 자세히 서술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재일조선인의 에스니시티에 관한 연구는 199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민족이나 국가를 둘러싼 의식의 상태를 ‘조국 지향’이나 ‘정주 지향’ 등으로 유형화하는 논의가 주류여서 이러한 인식은 현재도 널리 사람들에게 회자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는 주로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나는 ‘민족의식의 강약’이라는 지표에 근거해 단선적으로 재일조선인을 이해하도록 부추겼던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재일조선인의 아이덴티티를 ‘민족’의 문맥에서만 파악하는 풍조를 조장했던 점이다.
하지만, 본래 개인의 에스니시티는 그 개인이 놓인 사회적 상황과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아이덴티티의 상태를 포함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2016년에 출판한 《재일조선인이라는 민족 경험-개인에 입각한 공동성의 재고》에서는 철저하게 개인에 파고들면서도 민족을 둘러싼 경험을 그려내고자 시도했다. 예를 들면 일본인과 재일조선인의 국제결혼 가족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젠더도 포함한 가족 간 입장 차이를 뛰어넘기 위해 부부가 각자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고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출판 이후에는 그 기본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국가와 재일조선인 개인의 관계성에 더욱 초점을 맞춘 연구로 이동한다. 재일조선인의 내셔널리즘에 관해서는 그 리얼리티를 무시한 안일하고 일방적인 비판만 있고 내셔널리즘의 배타성을 무자각, 비판 없이 옹호하는 의견도 종종 보였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공화국)에 관한 이야기는 아카데미즘에서조차 논자의 가치 판단에 따라 나쁜 것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보였다. 그러한 언설 공간의 모습도 통틀어서 재일조선인에게 ‘국가’가 무엇인가에 관해 논의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결혼을 계기로 남한에 이주한 재일조선인 여성이 ‘한국’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재일조선인 대학생이 자신의 인생 과정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공화국으로의 조국 방문 경험을 얼마나 음미하는지 조사·연구를 진행 중이다.

당사자가 ‘된다’
사회학자가 사회 조사를 실시하는 주요한 목적 중 하나는 자신이 속한 사회를 타자의 시선에서 다시 그려봄으로써 주관만으로는 알아차리기 힘든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고, 알리는 것이다. 그때 문제가 되는 것은 조사자와 대상자의 관계성이다. 내 연구는 종종 ‘당사자 연구’로서 소개되는데, 나 자신이 그렇게 부른 적은 없다. ‘당사자 연구’의 장점으로는 연구자가 대상자와 같은 특성이 있기 때문에 대상자의 주관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종종 거론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같은 재일조선인일지라도 타자와 모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당사자 연구’는 자신의 주관에 타자의 경험을 회수해버리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연구자는 공기와 같은 특징 없는 존재로서 행동하고, 객관적인 기술만 유의하면 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연구 대상자에게 ‘나(조사자)’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동료’로 간주하는 일도 있는가 하면, ‘권위적인 대학교수’, ‘괴로운 경험을 물어보는 귀찮은 사람’, ‘자신이 마이너리티인 척 구는 가해자’일지도 모른다. 대상자의 이야기는 그러한 관계성에 반드시 규정되는 것이고 그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결국 ‘당사자’의 입장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권력성을 항상 자문자답하면서 그럼에도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대상자의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갈등은 결코 연구자만 직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항상 타자와의 접촉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의 입장이나 경험,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그럴 때 자신의 입장을 되묻는 성찰적인 시점을 모두가 지닐 수 있다면 차별이나 편견을 비롯한 타자와의 접촉 영역에서 발생하는 폭력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연구자로서 역할은 사람들의 실천을 기술하고, 그것을 다시금 사람들의 실천으로 되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자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되돌아보기 위한 ‘재료’를 제공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연구하고 싶다.
이홍장 : 1982년생. 현재 고베가쿠인대학 현대사회학부 준교수. 시가조선초급학교 졸업 후 일본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거쳐 교토대학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에서 석사, 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일본학술진흥회특별연구원(PD)등을 거쳐 현직. 저서는 《재일조선인이라는 민족 경험-개인에 입각한 공동성의 재고》(生活書院,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