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동포소식

조선인으로서 당연하게 - 3040 vol.5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2-06-28 01:24 | 61 | 0

본문

642b2feb492b3480cf5fc4f3db205e3a_1656346918_6123.png 

김성랑(32, 조청 오사카부 본부위원장)

1990년 4월, 오사카부 출신. 나카오사카 조선초중급학교(당시), 오사카 조선고급학교(당시)를 거쳐 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 졸업 후 재일조선청년동맹의 전임활동가. 오사카의 가와키타(河北) 기요쿠토(旭都) 지부에서 3년간 활동 후 2016년에 조청 오사카부 본부 선전문화 부부장으로 취임. 2018년부터 위원장을 맡고 있다. 

506dcb1ae562263cdd35b7d56c649b22_1650809011_6487.jpg


“축구든 조선무용이든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은 아니었다. 다만 학교가 좋아서 막연히 ‘장래에는 동포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진로가 결정된 것은 조선대학교 시절. 현재로 연결되는 역사, 민족교육의 중요성 등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실제로 느껴졌고 갱신되어 갔다.’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 대해 깊이 인식하면서 자신은 어떤 일이 맞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출신지역에서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의 전임활동가로 첫발을 내딛었다. 배속된 곳은 오사카시의 동북쪽을 관할하는 가와키타(河北) 기요쿠토(旭都) 지부다. 지역의 청년들을 찾아가 관계를 쌓고 정기적으로 모이는 자리와 각종 이벤트를 기획했다. 또 일본학교에 다니는 동포를 대상으로 아동교실(유치원, 초급)이나 학생회(중‧고교) 활동을 부활시켰다. 가와키타(河北) 기요쿠토(旭都) 지부에는 이전까지 수년간 조청 전임활동가가 없어 이런 활동이 정지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김씨도 주1회 우리말 교실의 강사를 맡고 있다.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배우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흥미를 키워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고 한다. 유치반부터 조선학교에 다닌 김성랑 씨에게는 평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시간이다. ‘나는 조선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위원장을 해보지 않겠어요?” 의사타진을 받은 것은 2018년이다. 김성랑 씨가 조청 오사카부 본부로 이동한 지 3년째, 업무도 익숙해진 시기였다. 큰 역할이었지만 신기하게 불안하지 않았고 ‘내가 해도 좋다면 하겠습니다.’라며 수락했다. 


날마다 이어지는 동포 가정방문, 멤버 활동가들과 회의, 대중 이벤트 준비… 각 지역의 조청 전임자들과 연대하며 열심히 활동에 나섰다. 2019년에는 오사카부 내 모든 지부에 아동교실을 설치했다. 2020년부터 코로나 영향 속에도 SNS를 활용해 동포청년들과 만나기 위한 시도도 계속했다. 선전홍보에 힘을 쏟은 결과 그전까지 알지 못했던 일본학교에 다니는 동포 180명 이상과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었다. 

올해 4월에 32세가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조청을 졸업하는 연령이다. 다음 커리어는 어디에서 쌓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근간에 있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동포들이 조선인으로서 살아가는 기쁨을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해나가고 싶다.”


642b2feb492b3480cf5fc4f3db205e3a_1656347041_4175.png

조청 오사카에서 펼치고 있는 <민족교육을 지키자! 1인 1천 엔 운동>의 기부금 전달식.

올해로 9회째를 맞았다. 우측에서 세 번째가 김씨.

160명의 지원자들에게서 120만 엔이 넘는 기부금이 모였다.(2월 17일. 김씨 제공)


----

해당 글은 <月刊イオ>(월간이어) 2022년 5월 호의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몽당연필 번역팀
법률상담 문의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