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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으로서 살아갈 미래 - 우리의 주체적인 시간 축을 갖자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2-06-28 01:29 | 59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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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종헌(한국문제연구소 소장) 

1951년 나라 현 출생. 재일조선인 2세. 1975년 서울대학교 의학부에 유학 중 ‘북의 간첩’이라는 혐의를 씌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그 후에 사형판결 확정.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1988년에 가석방, 이듬해에 일본으로 돌아온다. 2012년 재심청구가 인정되어 2013년에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 2015년 8월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저서로 『사형대에서 교단으로 : 내가 체험한 한국현대사』(死刑台から教壇へ  私が体験した韓国現代史 2010, 角川学芸出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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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으로서의 인권


1948년 12월 10일, 제3회 유엔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제1조에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되어 있다. 자유와 평등을 기축으로 한 근대 인권의 개념은 1789년, 프랑스혁명에 의한 인권선언을 토대로 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단순히 권리의 평등이 아니라 ‘존엄’의 평등을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체험한 나치스 독일이나 대일본제국의 주민학살 등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존엄’을 추가한 의의는 매우 무겁다. 내 나름의 해석인데 자유와 평등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며, 주민의 존엄이 짓밟히고 있다면 민주사회가 외치는 자유와 평등도 허무한 공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식민지 종주국에서 분단국가의 해외동포로서 사는 집단’이라고도 할까. 그러나 어떻게 규정해도 우리의 자유는 지금도 제약 당하고 있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심각한 불평등 상태에 놓여 왔음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보편적인 인권에 그치지 않고 재일조선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인권이자 존엄이다. 


36년간의 식민지 통지가 끝났어도 일본사회의 뿌리 깊은 식민지주의는 잔존하고 있다. 그 단적인 표상이 민족교육권의 부정이며 만연하는 헤이트 폭력이다. 조선학교의 무상화 배제, 우토로 마을의 방화 테러는 그야말로 식민지주의라는 구조적 폭력의 추태 외에는 그 무엇도 아니다. 또 독립 후에도 77년에 이르는 민족의 분단 상황은 우리가 소속이나 이념을 초월해 동포로서 단결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우리에 대한 박해와 탄압은 남북을 불문하고 조선반도에 뿌리를 둔 재일조선인을 표적으로 한 것이다. 그런 연유로 조선민족의 진짜 해방은 식민지주의와 분단 상황을 극복하는 가운데 달성될 것이며, 그것이 우리들의 인권과 존엄을 실현하는 길이다. 



나의 청춘 - 사형선고와 감방에서 본 미래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고교까지 일본의 학교교육을 받은 나는 적어도 대학은 조국에서 다니고 싶은 마음에 서울대학교 의학부에 유학한다. 언어와 문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조국의 젊은이들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정권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을 억압했고, 나도 1975년에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학교 내 진보적인 서클에 참가한 것에 불과한 일개 학생을 당국은 재일조선인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간첩단 사건의 주모자’로 날조해 사형판결을 선고한다. 24세였던 나는 서울구치소에서 최연소 정치범 사형수가 되었다. 


감방 안에는 달력과 시계가 없다. 시간과 공간을 형무소 당국이 지배한다. 수인에게서 시간과 세월의 감각을 빼앗아 자율적인 생활설계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항상 과거의 ‘죄’와 마주할 것을 강요하고, 이상이나 신념을 흔들어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군사독재가 통치하는 암흑의 시대에도 감옥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끊임없이 뒤를 이었다. 사회의 모순에 눈을 돌리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면 장래가 보장될 텐데 그들은 개인의 안락보다도 만인의 존엄이 풍요롭게 숨 쉬는 사회를 원했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에 참여해 당당히 수감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나는 조국의 미래에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민족분단의 아픔을 공유하는 한 사람의 재일조선인으로서 나의 청춘을 조국의 감옥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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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소에서 강연도 하고 있는 강종헌 씨.

사진은 올해 1월에 개최된 재일본조선인의학협회 서일본의 신춘강연회 사진.

꽃다발을 들고 있는 이가 강종헌 씨. (본인 제공) 


사회의 변혁을 지향하는 재일조선인 


일본사회는 재일조선인이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것을 곤란하게 만든다. 역대 정부의 민족차별 정책은 시민사회와 언론의 양심을 마비시켜서 우리의 목소리가 좀처럼 반영되지 않는다. 


교과서도 과거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실태를 가르치지 않아 다음 세대의 역사인식은 현저히 왜곡되어 있다. 평화헌법을 가진 국가가 자국민에게 식민지주의를 온존시키고 있는 모순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는 힘을 합쳐 싸워왔다. 각지에서 전개되었던 무상화 재판은 패소가 잇따랐다. 일련의 소송은 헛수고였을까.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무의미한 패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패전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잇따른 패전에 실망해 운동을 포기한 시점에서 ‘패전’은 ‘패배’가 된다. 권력은 그것을 기다릴 것이다. 시간과 세월을 일본정부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의 주체적인 시간 축(결코 포기하지 않는 신념과 용기)을 갖자.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존엄을 우리들의 단결된 힘으로 지키고 구현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동포들이 모여 고민을 털어놓고 어떻게 하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지 대화할 수 있는 광장(마당)이 각지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지혜를 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보탠다’는 말은 항일 의병투쟁 시기의 슬로건인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통하는 민족적인 교훈이리라. 


억압의 현실과 압도적인 차별구조에 매몰되지 않도록 재일조선인의 주체적인 시간 축을 설정하자. 그러면 일본사회가 부과하고 있는 사고영역의 시간적․공간적인 제약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재일조선인으로서의 로망을 키워 공유하고 싶다. 식민지주의를 극복하고 민족분단의 현실을 평화통일로 변혁할 장대한 로망. 나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능동적인 의지에 기초를 둔 삶의 보람이기 때문에 로망인 것이다. 막연한 희망을 뛰어넘어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전망을 공유하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를 염두에 두자. 먼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닌 동료와 힘을 합쳐 전진할 것. 

(2022.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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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月刊イオ>(월간이어) 2022년 5월 호의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몽당연필 번역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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