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본문
조선학교. 한국사회에서 이 이름은 어떤 울림을 가질까. 여전히 북한학교나 조선시대 서당 정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이제는 한국에서도 재일조선인 민족교육 기관으로서의 조선학교로 많이 알려져 있다. 최근에도 일본 ‘고교무상화’ 제도에서 제외된 조선학교 관계자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일으킨 소송 판결이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3년부터 일본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 고교무상화 재판은 오사카에서는 승소했으나, 히로시마와 도쿄에서는 패소하는 등 지역마다 희비가 엇갈리는 어려운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 북일관계 악화와 일본정부에 의한 대북 제재는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교적 배려보다는 교육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민주당 정권 시기의 일본정부의 견해는 현 아베정권에서는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교고무상화 재판 투쟁은 현재 일본정부의 태도와 일본 사회 내 조선학교의 역사적 위치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일본사회의 차별’은 조선학교를 표현하는 중요한 키워드임은 틀림없지만, 그것만으로 조선학교의 성격을 특징지을 수는 없다. 더욱이 일본사회에서 소외된 ‘불쌍한 사람들’로만 여기는 것도 지나치게 피상적이다. 해방 후 조선학교가 걸어온 길은 한반도 격동의 역사와 깊이 맞물려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일궈진 민족교육의 장은 재외동포 커뮤니티로서 보기드문 풍부한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식민과 분단, 귀국과 정주, 문화적 계승과 번안, 전국적 조직화와 현지화 등 조선학교의 역동적인 실천들을 두터운 역사로 서술하고 기억하는 일은 재일조선인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과거를 극복하고 통일시대를 다시 열어가는 한국사회의 과제이기도 하다.
본서의 출간이 이와 같은 한국 학계와 시민사회가 기울여온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