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본문
다시, 조선학교
본격적으로 한국생활을 시작하던 10년 전, 조선학교를 졸업했다는 내게 누군가는 “한국으로 넘어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흔히 ‘조총련 학교’로 불렸던 오랜 시절을 생각하면 조선학교 출신자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 후 10년 사이에 한국 사회와 조선학교는 이전과 비교가 안될 만큼 가까워졌다. 학교 땅을 둘러싸고 도쿄도지사와 한판 싸움을 하고 있던 에다가와조선학교에 대한 지원모금운동은 언론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고 홋가이도조선학교의 사소하면서도 찐한 일상을 애정 있게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도 기억에 새롭다. 또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문화운동도 진행중이다. 올해 2014년에는 오사카조선학교 럭비 선수들의 모습을 담은 「60만 번의 트라이」가 전주영화제 무비꼴라쥬상을 받았다.
이 비약적인 교류와 연대를 이끈 것은 활동가와 언론인, 연구자들의 자기 성찰과 통일에 대한 소박한 꿈, 그리고 이에 말 없이 동참한 무수의 시민들이다. 조선학교를 둘러싼 활동들을 접하면서 나는 한국 사회의 평범한 시민들이 갖는 도덕과 양심을 봤다.
그런데 2014년 현재, 왜 다시 ‘조선학교’인가? 지금 이 지점에서 조선학교 문제를 조명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시 질문하자면, 우리는 조선학교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끔씩 조선학교에 관한 내용을 가르치거나 영상물을 보이기도 한다. 학생들 감상문을 보니 대체적으로 호응은 뜨거운데 흔히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너무 좋다. 그런데 북한식 교육을 받고 있어 안타깝다. 학생들 절반 이상이 한국적이라는데 하루빨리 한국정부가 그들을 책임져야 한다”. 조선학교를 ‘조총련 학교’라며 기피했던 시절과 비교해 보면 이런 반응은 건전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민주화 이후 자란 세대에게 조선학교는 좋든 싫든 새롭고 낯선 곳이다. 조선학교를 일종의 대안학교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두말할 것 없이 조선학교는 오랫동안 이북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유지되어 왔으며 이는 숨길 수도, 숨길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재일조선인들이 왜 그런 역사를 걸어왔는가. 우리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역사, 즉 우리 안에 있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에 서있다. 탈-분단 시대라 불린 지 10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현재,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걸음을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책은 몇 명의 활동가들이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기획되었다. 조선학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보통의 시민들이 언제든지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조선학교에 관한 필요한 정보를 담은 아담한 책을 만들자. 검색창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접근성 높은 책을 만들자. 실지로 원고를 모아 보니 집필자들의 열정이 우리의 애초의 기획을 훨씬 뛰어넘었다. 덕분에 알찬 내용을 담은 책이 완성되었다. (들어가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