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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신문] 개교 75년 만에 처음으로 부임한 상근 양호교사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1-12-15 23:53 | 42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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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있는 조선학교의 보건실(양호실) 선생님 

개교 75년 만에 처음으로 상근 양호교사

12년 전에 있은 교토조선학교 습격사건을 계기로 양호교사가 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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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교사로 부임한 조원실 선생님(교토시 후시미구 교토조선초급학교 양호실)

 

교토조선초급학교(교토시 후시미구)에는 올해 4, 1946년 개교 이후 처음으로 상근 양호교사가 부임했다. 공적보조가 미흡한 조선학교에는 양호교사라는 존재 자체가 드물어서 전국에서도 상근하는 양호교사가 부임한 것은 약 15년 만이다.

신임교원이 보건실 선생님을 목표로 한 계기는 12년 전(2009)에 교토에서 발생한 조선학교를 향한 혐오범죄(헤이트 크라임) 사건이었다.

 


도저히 듣고 있기 힘든 폭언을 동영상 사이트에서 보다


안녕하세요.”

등교한 아이들에게 양호교사 조원실 씨(27)가 현관에서 인사를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나 표정이 어두운 아이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일과이다.

 

조원실 씨는 기후현 출신의 재일코리안 3세다. 작년까지 아이치현에 있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양호교사가 된 계기는 200912, <재일(在日)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이 교토조선제1초급학교(현재는 통합되어 교토조선초급학교)를 습격했던 사건이다.

 

당시 15세였던 조씨는 사건의 경위를 촬영한 영상을 어머니와 함께 유튜브로 보았다.

스파이의 자식들” “바퀴벌레 조센징

도저히 듣고 있기 힘든 폭언이 가슴을 도려내었다.

 


자신도 경험한 차별


조씨도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고 조선학교에 통학하던 중 차에 타고 있던 남성에게서 별안간 죽어라, 멍청아.” 라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교토에서 일어난 사건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도저히 동영상을 끝까지 볼 수 없었다.

 

당시 교토조선제1초급학교에는 심리적 상처를 돌볼 교원이 없어 한밤중에 울음을 터뜨리는 등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많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언젠가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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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관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는 조원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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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대화. 아이들을 살피기 위해 적극적으로 교실로 찾아간다



심한 차별을 당하고 자신의 속내를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7년 후 간호사가 된 조씨는 조선학교에 고교무상화 적용을 호소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재일코리안 젊은이가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거듭하고 있는데 모르는 척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권리를 찾으려 하는데도 어째서 늘 저자세로 부탁을 해야 하는가.

 

재일코리안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차별을 당해서 괴롭고 힘들어도 속마음을 억누르고 사는 방법을 몸에 익힌 것이 아닐까.”

아이들과 마주하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키워주고 싶었다. 조선학교의 양호실에서 일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간호사인 조씨는 학교 현장에서 실습 등을 하면 양호교원으로 근무할 수 있는 국가자격을 받을 수 있다. 실습학교로 선택한 학교는 교토조선초급학교. 작년 10, 조씨는 교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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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실 표지판과 <보건실 편지>가 부착되어 있는 보건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 조선학교 <보건실>


교토조선초급학교에는 실습을 지도해줄 양호교원이 없었지만 이전에 자원봉사로 이 학교의 양호실 선생님을 맡았던 배테랑 양호교원인 사토 토모코 씨가 달려와 3일 동안 실습이 이뤄졌다. 이 실습이 끝나고 곧바로 조씨는 여기서 근무하고 싶다.”고 학교 측에 알렸다.

 

학교에서는 누구나 보건실 선생님을 원했다. 교과지도를 맡은 교원들은 보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없다. 상처의 응급처치나 발육 측정, 성교육, 심리적 케어 등은 모두 그때마다 임기응변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미흡한 공적 조성금, 자금부족이 양호교사 채용의 걸림돌


걸림돌은 자금부족이었다. 조선학교는 학교교육법에서 정한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공적보조금이 거의 없다. 교토조선초급학교의 운영비 가운데 교토부와 교토시에서 주는 교재구입 보조금은 약 5% 정도로 인건비나 설비비 등 운영비의 약 80%는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조선학교도 마찬가지여서 양호교원을 배치할 여력이 없어 양호선생님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15년 쯤 전에 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에 상근 양호교사가 있었던 사례가 마지막으로, 현재는 비상근 양호교사가 효고현에 있는 정도라고 한다.

 

조씨는 사토 씨에게 의논했다. ‘상근은 어려울까요?’

사토 씨의 대답은 비상근은 절대 안 된다.’였다.

 


배테랑 양호교원이 말한 <보건실 선생님>의 중요성


어째서 상근을 추천했을까. 교토부립 고교의 양호교원으로 약 40년을 근무한 사토 씨는 학교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고 집단에 끼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어떤 아이나 찾아올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서 모든 아이들의 배움을 보장하는 것이 보건실이라고 말한다.

2, 3회로는 응급처치나 보건지도밖에 할 수 없어요. 반드시 상근하는 양호교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룻밤을 고민한 조씨는 학교 측에 상근으로 고용해달라고 신청했다. 학교의 자금력만으로는 채용할 수 없기 때문에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꽃봉오리>(교토시)가 비용을 갹출했다. 개교 이후 처음으로 <보건실 선생님>이 학교에 상주하게 된 것이다.

 


마음을 열기 시작한 아이들


4, 조씨가 학교에 부임했다. 아침에 아이들의 등교를 지켜본 후에는 소독액 보충과 교내의 안전점검 등을 한다. 보건실 문에 지금 선생님이 있는 장소를 알리는 게시판이 생겼다.

<보건실 편지>도 발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양호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1, 2학년 학생은 어른의 치아가 너무 작은데 괜찮아요?’ 같은 질문을 갑자기 던지기도 한다. 병을 앓고 쉬었다가 다시 나온 학생이 교실에 들어가기 쉽도록 정신적인 케어를 해주기도 했다.

 

문봉수 교장은 예를 들어 신체측정 결과를 친구들끼리 비교하지 않도록 충고하기도 하고 아침에 힘들 때는 양호실에 와도 괜찮다며 무리하지 않도록 하는 등 우리 교원들에게는 없는 배려심이 있다.”고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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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이들이 힘든 차별과 맞닥뜨린다면


뿌리 깊은 차별이 남아있는 일본사회에서 아이들은 장래에 힘든 사건과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자신의 뿌리에 긍지를 가지라는 응원을 받으면 무조건 참기만 해서 아픔에 둔감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조씨. 자신이 받은 차별과 12년 전에 있었던 슬픈 사건을 가슴에 담고 ‘보건실에 와서 약해진 마음, 괴로운 마음을 보여주길 바란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인생을 시작하는데 조금이라도 뒷받침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며 웃었다



기사원문 보기 : https://www.kyoto-np.co.jp/articles/-/58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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