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시리즈

우리학교 시리즈

발생기의 우리학교 vol.61 조선대학교 풍물놀이 클럽 ‘세마치’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1-07-11 23:13 | 548 | 0

본문

발생기의 우리학교 vol.61 조선대학교 풍물놀이 클럽 세마치

 

꾸준히 이어가는 전통과 변화되는 역할

조선대학교(도쿄 고다이라 시 소재)에서 발족된 풍물놀이 클럽 세마치

경험자, 초보자를 불문하고 많은 학생들이 민족 타악기를 접하고 연주를 즐기는 장으로 발전해왔다. 불과 몇 명의 동호회에서 출발해 약 20년의 역사를 이어온 세마치의 시작을 취재했다.

 8db8086a8c1404755750408e6bb1a5fa_1626012417_0203.jpeg

세마치 초창기 멤버 5명은 당시 2학년, 1명이 신입생이었다. 


밤마다 들려오던 장구 소리

1998년에 조선대학교에 입학한 강지환 씨. 대학생활도 조금 익숙해진 어느 날 밤, 어디서에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강당에 도착한 강씨가 본 것은 한 학년 위의 선배들 5명이 모여 장구 연습을 하는 모습이었다.

비밀스런 집단을 이끌고 있던 이는 당시 2학년 조수호 씨였다. 조씨와 민족악기의 첫 만남은 중학교 3학년 때다. 나가노(長野) 조선초중급학교에서 선발되어 설맞이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했다. “우리나라에서 2개월 정도 민족악기를 접하며 지내고 다른 학교에서 온 친구들과도 만났어요. 점점 더 민족악기를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열정이 식지 않은 채 집에 돌아와 어머니 박미호 씨에게 도쿄 조선중고교에 가고 싶다,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부탁했다. 나가노 지역은 학구로 따지면 기숙사가 있는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제는 나도 부모라서 이해하지만 조선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죠. 그런 상황에서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해준 어머니에게는 감사한 마음뿐입니다.”라고 조씨는 말했다.

염원하던 도쿄 조선중고급학교로 진학한 조씨는 민족관현악부에 들어가 장세납을 맡았다. 3년간 오로지 연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조선대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망설임 없이 관현악부에 들어갔다.

 

첫 연주는 1분간

대학에서 야간축제가 있는데. 장구 연주로 흥을 돋워주지 않겠어?”

조선대학교위원회에 소속한 친구로부터 조씨가 의뢰를 받은 것은 대학 2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다. “관현악부에 있었으니까 장구도 할 수 있겠지,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라며 웃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동급생 중에서 멤버를 찾기 시작해 4명이 모였다. “하고는 싶었지만 계기가 없었죠. 일단 한 번 해볼까 하고 여기저기서 모은 낡은 악기로 연습을 시작했어요.”

조씨도 민족 타악기는 거의 초보자였다. 배웠던 경험이 있는 조선대학 서무과 직원에게 가르쳐 달라고 해 따라 연습하며 연주를 만들어 갔다. 강씨의 귀에 밤마다 들려온 것이 이 소리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제멋대로였다고 생각하는데, 만난 적도 거의 없는데 나도 하게 해주세요.’하고 부탁했죠.” 라고 말하는 강씨.

3때 히로시마 조선초중급학교 교내 행사에서 남성무용 멤버로 선발된 경험으로 조선의 문화예술에 흥미를 갖게 됐다는 강씨. “그때까지 축구밖에는 안했지만 조대에 와서는 기회가 있으면 민족악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선배들은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5번 정도 찾아 갔나. 소리가 들려와서 그냥 가서 연습하는 걸 봤죠. 그러다 해볼래?’ 라는 말을 들었고 드디어 참여할 수 있게 됐어요.”

기초훈련을 하고 드디어 장구를 치게 됐어요. 점점 실력이 늘어가는 나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도 기뻤죠.”

본 무대 자체는 1분 정도의 연주였는데 어라, 벌써 끝이야?’ 그런 반응도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나 즐거웠어요. 끝난 후에도 정기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의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멤버들로 계속 연습하기로 했어요.”(조씨)

 

어디까지나 동호회 성격의 모임이었다. 관현악부에 소속되어 있던 조씨를 비롯해 멤버들이 각기 다른 클럽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연습시간은 밤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강당에 조용히 모여 연습을 개시했다. 교원에게 발견돼 꾸중을 듣는 일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 후에도 6명이서 카세트테이프로 열심히 각 파트를 반복해 들으며 연습했고 민족타악기를 연주한 경험이 있는 직원이나 교원을 여러 차례 찾아가 기술을 배웠다. 강씨는 여러 명이서 호흡과 소리를 싱크로 시켜서 하나의 연주를 만들어 나가는 즐거움을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이듬해 1999, 대학 내에서 무대에 설 기회를 잡는다. “분명 그 해 첫 번째 행사였어요. 막이 오르자 우리 6명이 차례로 앉아 있었죠. 다들 그런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웃었어요. 하지만 연주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죠.”

그 공연을 계기로 참가 희망자가 잇달아 나왔는데 멤버들이 정했던 우리끼리 해보자는 결정 때문에 한동안은 엄격한 심사기준을 정해 신입부원을 받는 것을 제한했다고 한다.

 

8db8086a8c1404755750408e6bb1a5fa_1626012512_024.jpeg

세마치가 오랫동안 출연하고 있는 고려야유회에서의 공연모습(2019. 5)

 

몇 만 엔 하는 장구도 자비로 구입

대학 내에서의 공연이 있는 후 외부에서도 조금씩 연주할 기회가 늘어갔다. 동포들의 모임, 조선학교의 행사 외에 일본의 대학축제에 출연한 적도 있다. 대외공연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조대 무용부와 함께 파견을 나가는 일도 많았다.

멤버들의 기술이 안정되어 가자 연주 프로그램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곡을 연습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금강산가극단 같은 프로연주가에게도 배우러 갔다. 장기간 휴가 때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기도 자신들이 하나씩 갖추어 갔다고 한다. “도쿄에 한국에서 들여온 민족 타악기를 판매하는 가게가 있었어요. 비싸긴 했지만.”

이 무렵 동호회의 이름을 세마치로 정했다. “이름을 지으려고 장단 사전 같은데서 이런 저런 힌트를 찾아봤어요.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세마치입니다. 경상도 방언으로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양산도 장단입니다. ‘노들강변같이 동포들이라면 누구나 들어 본 적이 있는 유명한 곡에서 자주 쓰이는 장단이죠.”

동포들에게 사랑받는 집단이 되자는 바람을 담아 조씨가 지은 이름이다.

같은 해, 처음으로 단독공연 ()’을 기획했다. 조대는 일본 각지에서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드는 인재의 보고라 생각한 조씨는 당시 대학 내에서 이름을 날리던 인재들에게 출연을 부탁하고 무대를 연출했다. 현재 가수 릉향으로 활약하는 이릉향(李綾香)씨도 이 공연에 참가했다. 본 무대는 대호평이었다. 세마치의 지명도를 더욱더 끌어올려 다시 한 번 학교 내에서 주목을 받았다.

 

8db8086a8c1404755750408e6bb1a5fa_1626012486_3493.jpg

조대위원회로부터 공연의뢰를 받은 후 공연. 세마치 발족의 계기가 되었다(1998년)


동포들에게 사랑받는 집단으로

조씨와 멤버들이 4학년, 강씨가 3학년이던 2000. 이때까지도 자주 관심을 가져 주었던 교원의 조언으로 세마치는 조대의 정식 클럽으로 등록된다. “활동의 폭도 넓어져 졸업 직전에 있은 공연 ()’에는 50여 명이 출연했을 겁니다.”(조씨)

정식클럽이 되었으니 후배 교육도 생각해야 했다. 조씨는 그런 부분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회에 나가서 가끔씩 조대 세마치클럽에서 연주했다는 말을 들으면 기뻤죠. 우리가 처음 발족했다는 사실은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았지만.”

조씨와 멤버들이 졸업한 후 리더를 맡은 것이 강씨. “민족악기의 장점을 널리 알리는 전도사로서의 역할도 계속 염두 했기 때문에 압박감도 있었지만 어떻게 이 세마치의 형태를 학교에 남길 것인지 장기적인 시선으로 시스템 만들기에 힘을 쏟았던 기간이었어요.”

세마치에는 그 후 나가노 초중급학교에서 민족타악기를 배운 졸업생들이 다수 들어왔다. 후배들의 수준을 높여 주기 위해 온힘을 쏟았다.

현재 세마치의 고문을 맡고 있는 김철수 씨(조선대학교 조선문제연구센터 부센터장)고다이라 시민축제에 참가하는 등 조선학교를 지역사회에 어필하기 위해 세마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클럽창단 당시에 비해 한 층 더 발전된 역할을 하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 월간 <이어> 20217월호에서 

[이 게시물은 몽당연필님에 의해 2021-07-11 23:15:51 동포소식에서 이동 됨]
법률상담 문의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