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시리즈
발생기의 우리학교 vol.65 창립 75주년 기념지 「추억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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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의 우리학교 vol.65 창립 75주년 기념지 「추억모이」
미에(三重) 현의 동포들이여, 아쿠라가와(阿倉川)로.
2021년 9월 1일에 창립 75주년을 맞은 욧카이치(四日市) 조선초중급학교의 유지들이 모여 기념지 「추억모이-아쿠라가와(阿倉川)와 함께」를 이 해 10월 15일에 출판했다. 미에 현에 오직 하나뿐인 조선학교의 추억을 찾아 모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지금 나의 책무’―
제작팀의 뜨거운 마음이 담겨 있는 한권이다.

75년의 역사, 풀어보다
추억모이는 ‘추억을 모으다’는 의미로 한국의 영화 ‘말모이’에서 힌트를 얻은 프로젝트명이다. ‘지금의 아이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이 책으로 자신들의 학교와 선대에 관해 알고 배워 긍지로 여길 수 있는, 후세에 남길 수 있는 이 기념지가 기쁘면서도 쑥스러운데, 추억 어린 사진을 보고 옛날을 떠올리며 다시 학교를 찾게 되어 학교 지원의 폭을 넓히고 싶었다. 학교에 수익을 남기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
기념지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20여 년 전에 미에 현으로 이주해 2명의 아들을 욧카이치 초중급학교에 보낸 가나가와 현 출신의 김금순 씨(50).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자 직접 학교를 지원하는 일에 나서지 못하는 아쉬움이 몇 년 동안 계속되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던 차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우연히 조선상공신문에서 다른 현의 성공사례를 읽은 것과 욧카이치 초중급학교를 도와온 2세 어르신들이 차츰 세상을 떠나는 현실, 디자인사무소에서 일하는 이점 등으로 기념지 제작과 판매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코로나 감염 확산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만약 기념행사를 할 수 없게 되면 재학생과 동포들의 추억에 남길 것이 아무 것도 없어지게 된다.”는 초조함도 원동력이 되었다.
정준선 교장(43)을 책임자로 하는 기념지 제작팀이 만들어진 것은 2021년 4월이다. 곧바로 시작한 것이 학교 한 곳에 있는 로커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사진과 몇 권의 앨범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수천 장에 이르는 사진을 스캔하고, 정리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끝까지 해냈다. 현역 교원과 20대가 된 졸업생, 재학생, 일본학교로 전학을 간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동포 가정을 방문하고 SNS도 활용
역사적 사실 정리에 관해서는 의지할 만한 사람이 이미 고령이거나 병상에 있거나 고인이 되어 난관에 부딪혔다. 겨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이치 현에 거주하는 전 교장과 전 교원 몇 명의 기억에 의존해 기초자료가 될 교원명부를 정리했다. 또 흑백이었던 60주년 기념지를 각 기수별 졸업생들에게 졸업앨범을 빌려 디지털로 복원했다. 동시에 각 가정에 보관된 사진을 찾아내기 위해 구와나(桑名), 욧카이치시(四日市市), 스즈카(鈴鹿), 쓰(津) 등으로 매주 많은 동포들의 집을 방문했다. 그 과정에서 학교로부터 멀어져 있던 분들이 협찬을 해주고 60년 이상 이전의 졸업생들이 추억을 즐겁게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딱딱하고 어려운 역사만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읽지 않을 것이다.”며 SNS와 스마트 폰으로 쉽게 사진을 업로드해달라고 부탁하며 학교 홈페이지와 SNS로 <추억모이 프로젝트>를 알렸다. 기념지에는 <제1장 75년의 궤적>과 <제2장 추억모이 편> 2부로 구성했다. 제1장에서는 학교를 지켜왔던 사람들의 실제 경험이 담겨있고, 2장에는 일본 각지에 흩어진 졸업생과 동포들에게 모은 약 300매의 사진이 지면 가득 소개되어 있다. 일본 각지에서 투고와 사진을 보내온 것에 제작팀은 크게 힘을 얻었다.
- 학교폐쇄령에 맞서 싸운 미에 현의 동포들. 폐쇄 직전에 찍은 단체 사진. 이후 13명의 아동들과 함께 계속해서 '자주학교'를 끝까지 지켜냈다. -
표지는 아쿠라가와(阿倉川) 역
표지는 졸업생이자 미에 현에 거주하는 김청미 씨(52)가 그린 것으로, 긴테츠 아쿠라가와 역 홈에서 보이는 학교의 풍경이다. “욧카이치 학교는 전국에서도 드물게 역 바로 옆에 학교가 있다. 항상 건널목에서 들리는 소리, 역 홈에서 들려오는 방송을 들으며 수업을 받았다. 때문에 역과 학교는 늘 함께였다. 아쿠라가와 역과 학교가 기억 속에 함께 한다.”고 말하는 김씨.
부제인 ‘아쿠라가와와 함께’는 정교장의 아이디어다.
기념지에는 이 학교의 역사를 새겨온 교직원과 동포, 졸업생의 에세이가 많이 수록되어 있고, 75년의 역사가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도쿄도에 거주하는 성기진 씨(84)는 제1장에 기고했다. 이 학교 교원으로 부임했던 1959년 9월에 초대형의 이세만(伊勢灣) 태풍에 피해를 입었다. “사망자가 5,000명이 넘고 주택은 흙탕물처럼 변한 바다에 잠겼다…. 내가 살았던 집도 수몰됐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는 학교에서 지내야 했다. 그렇게 몇 달간 근처에 사는 학부형들이 매일 교대로 저녁식사에 불러주었고, 같은 반 여학생들이 점심 도시락을 빠짐없이 갖다 주었다. 그런 배려에 가슴이 뜨거웠다.”(기념지에서)
성 씨와 같은 무렵에 교원을 역임한 박천수 씨(89)는 주상운 교장의 요청으로 교가를 만들었던 추억을, 쿠스(楠) 분회 소속의 학부형 박종호 씨(80)는 교육회 이사들과 체육관 건설(75년)이라는 큰 사업을 이룩해낸 일과 전차로 통학하는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순찰을 돌았던 기억을 적었다. 이 학교에서는 1980년에 어머니회가 만들어졌는데, 기념지에는 어머니회 통신 「정성(鄭誠)」 제1호도 게재되어 있다.
“욧카이치 초중급학교의 역사를 모으면서 욧카이치에는 진도 사람이 많다는 사실 등 지역별로 국어강습소 위치부터 출신지별로 조선인이 모여 살았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52년에 욧카이치 시장과 교육장이 학교를 시찰했고, PTA(교원과 학부형 모임)에 보조금이 지출된 것도 전국적으로 드문 예였고, 1970년대부터는 조국(북)에서 다수의 대표단이 학교를 찾아왔다. 주조(鑄造)가 발달한 지역(쿠와나 桑名)이라는 점도 있지만 공업기술대표단이 학교를 내방한 일에는 깜짝 놀랐다. 교직원조합이나 인근 일본학교와 교류한 전통이 상당히 오래된 것도…”라고 말한 이는 제작팀의 신정춘 씨(33)다. “1세가 거의 타계했기 때문에 행정에 남아있는 역사자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증언수집에 관한 전문성이 없는 가운데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서 기록할 것인지 어려움도 느꼈다.”고 신 씨는 말한다.
“2세들이 점점 세상을 떠나고 있다. 대부분의 어르신은 강경한 부류여서 가족이나 자녀들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에피소드가 아주 많았기에 이미 부모가 된 자녀들이 놀라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고 한 이는 김금순 씨다. “추억모이를 계기로 미에 현 동포들 사이에 모교에 대해 대화하는 광경이 좀 더 많아지길 바란다. 각자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기념지가 대화의 소재가 되어 웃는 일이 가득해지기를 바란다.” 코로나 확산으로 연기되었던 75주년 기념행사는 2월 13일(일)에 아사케플라자에서 열린다. (취재 협조=김금순 씨)
* 월간 <이어> 2022년 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