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시리즈
발생기의 우리학교 Vol.66 학교생활 편 _ 지바(千葉) 조선초중급학교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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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의 우리학교 Vol.66 학교생활 편 _ 지바(千葉) 조선초중급학교의 식당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된장라면의 맛
지바 조선초중급학교(지바현 지바시)는 기숙사가 있는 것 외에 도심부의 초·중급학교로는 보기 드물게 식당과 급식을 하는 학교다. 그 역사는 1963년, 옛 교사가 준공되기 직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5년에 식당 설치
옛 교사는 1963년 1월 10일, 지바시 나니와초(浪花町)의 현재 장소에 완공되었다. 이 학교 창립 75주년에 발행된 기념지에 따르면 이듬해인 1964년 3월 무렵, 학교 부지를 100평 확장해 학생기숙사 <나니와 소(浪花 荘)>가 개설되어 있다.(나중에 히카리 소(光 荘)로 개칭)
지바현 남부의 다테야마(館山), 가쓰우라(勝浦), 오오타키(大多喜) 등 거리가 먼 지역에 있는 아동·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며 지낼 수 있는 기숙사에 들어왔다. 일부는 가족과 함께 들어온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듬해인 1965년 4월, 학교에 식당과 매점이 증축되었다. 식당이 설치된 것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식사를 만드는 일과 당시 가난한 아이들도 적지 않은 가운데 아이들에게 따듯한 밥을 먹이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식당이 설치된 당초부터 반세기에 걸쳐 조리장으로 일한 이가 김화강(92) 씨다. 김화강 씨는 남편인 고 김숙일 씨가 학교교육회 회장을 역임한 관계로 식당 일을 돕게 되었다. 아들 진성(64) 씨가 초급부에 입학하면서부터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교생 수는 400명 규모였다. 매일 그 수에 맞춘 점심식사와 기숙사생들의 아침과 저녁 식사에 세탁까지도 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식당 어머니’로 불리다가 나이가 든 후에는 ‘식당 할머니’로 더욱 친근해진 김화강 씨.
이 학교 교육회 직원인 권순희(52) 씨도 김화강 씨가 만든 급식을 먹고 자란 졸업생 가운데 한 사람이다. 요일마다 메뉴가 정해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한 메뉴는 ‘토요일의 된장라면’이었다고 한다.
권 씨에게 김화강 씨는 나쁜 짓을 하면 혼을 내는 무서운 ‘식당 어머니’이기도 했다. “식당에 줄을 서서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 하며 긴 젓가락으로 장딴지를 찰싹찰싹 때리기도 하셨어요.” 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식당에서 나온 된장라면은 이 학교 졸업생들에게 ‘소울 푸드’다. 그 졸업생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지바 우리학교에 보낸다. 당시의 이야기를 부모들에게 들었는지, 재학생들이 ‘된장라면이 먹고 싶다’는 얘기를 지금도 한다고 권 씨가 말해주었다.

1987년부터 급식제도 실시
지바 초중급학교의 현재 교사는 1979년에 준공되었다. 식당은 새 교사로 바뀐 후로 일시적으로 없어졌는데, 86년에 학교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약 3,000만 엔의 예산을 세워 컴퓨터실과 식당·조리장을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이듬해 2월에 설비가 갖춰져 4워부터 급식이 시작되었다. 기념사업의 실행위원을 맡은 이들은 당시 30대 이하의 젊은 동포들이었다.
이 학교가 급식제도를 실시한 것은 점심에 바로 만든 따듯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점 외에도 통학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아 빵이나 주스 등으로 점심을 때우는 아동·학생들의 영양상태 균형을 고려해 시작된 조치였다.(조선신보 1988년 1월 20일자)
당시의 급식은 초급부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월·수·금, 초급부 6학년부터 중급부 3학년까지는 화·목·토요일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별로 당번인 아동과 학생이 그날 교실에 있는 학생 수 만큼의 음식을 받아 교실로 가져간다. 교실에서는 각자 쟁반을 들고 당번에게서 급식을 배급받는 형식이다. 희망자는 급식 날이 아니어도 식권을 사서 식당에서 먹을 수 있었다. 카레, 닭튀김, 비빔밥 같은 평소의 메뉴는 당시부터 인기였다. 당시 전교생 수는 370명 정도였다. 조리원도 5명이었다.
그로부터 30여 년. 지금도 급식으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 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새 교사로 바뀌고 나서도 조리장에서 계속 일해 온 김화강 씨는 2016년, 고령으로 반세기 이상에 걸친 식당 일에서 은퇴했다. 이 학교 45기 졸업생인 김정태(29) 씨는 김화강 씨의 손자이다. 재학 당시에는 “할머니가 매일 조리장에서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어서 특별히 이상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고 한다. 식당도 ‘늘 그곳에 있는 것이 당연’해서 그 고마움을 졸업하고 나서야 실감했다고 한다. 김 씨에게 우리학교 식당의 매력은 ‘조선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수업시간 이외에도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기르고, 조선사람으로서 성장시켜준 장소’라고 한다.
- 새 교사에 마련된 식당(87년 2월 완공)에서 급식 준비를 하는 조리원 어머니들(88년 2월 촬영, 사진 조선신보) -
대대로 이어지는 마음
2월 말의 어느 날. 점심시간 전에 지바학교의 식당을 찾아가니 조리장에서 2명의 식당 어머니들이 급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김미나(53) 씨와 한미리(44) 씨다. 미나 씨는 식당에서 일한 것이 올해로 8년째, 미리 씨는 5년째가 된다.
이날 메뉴는 불고기덮밥. 12시 반이 지나 4교시 수업이 끝나자 아동·학생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원래는 초급부 저학년, 고학년, 중급부 순서로 학기마다 교대로 식당과 교실로 나뉘어 먹었는데, 코로나 영향 속에 식당에서의 식사는 일시 중지되었다. 각자 분량만큼 담겨진 식사를 받아들고 교실로 가서 ‘침묵 식사’를 한다고 한다.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맛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더 달라고 했을 때는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는 미나 씨.
메뉴는 30가지 정도 있고, 한 달 동안 매일 메뉴가 바뀌어 나온다. 새로운 메뉴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고기두부는 도쿄중고급학교 가까이에 있는 ‘오오반(大番)’의 인기메뉴인 ‘겨자소스 구이’를 참고해서 만들었는데, 추운 겨울에 딱 맞는 메뉴다. “하지만 아이들의 인기메뉴 가운데 부동의 2top은 카레와 닭튀김이다. 조선음식으로는 국밥이지요.”(미나 씨)
‘학부모 입장에서도 급식은 고마운 존재’라며 이 학교에 3명의 자녀를 보내고 있는 미리 씨가 말한다. 맞벌이 가정이라 매일 도시락을 만들려면 부모들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주 토요일은 각 가정에서 점심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코로나 영향으로 한때 식당운영이 멈춰 각 가정에서 매일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기간이 있었다며, ‘그 때 식당의 고마움을 통감했다’고 한다.
김유섭 교장(49)은 ‘보호자의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며, 식생활 교육면에서도 급식의 의의는 크다. 운영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 나가고 싶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매일 따듯하고 맛있는 식사를─.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그 마음은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

*월간 <이어> 2022년 4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