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시리즈

우리학교 시리즈

발생기의 우리학교 Vol.68 히가시(東) 오사카 조선초급학교 어머니회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3-02-14 17:46 | 32 | 0

본문

발생기의 우리학교 Vol.68 히가시(東) 오사카 조선초급학교 어머니회


바자회 해볼까?’ 이것이 <어머니회>를 만든 계기 

히가시 오사카 조선초급학교 어머니회는 일본 전국의 조선학교 중에서도 이른 시기에 생긴 어머니회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역대 회장들의 인터뷰를 통해 초창기를 중심으로 한 어머니회의 활동을 돌아보았다.

 

fb74cf51dd51678b0c3c954fecec0ce0_1676445913_2011.jpg
 - 학교건설 공사에 땀을 흘리는 어머니들(촬영시기 불분명배경을 보아 1971년 준공된 현 교사 이전으로 보임) -

 

다 같이 해보자

학교 창립 50주년에 발행된 기념지에 따르면 히가시() 오사카 조선초급학교(이하 동초東初’) 어머니회는 1974년에 결성되었다. 당시 교명은 히가시 오사카 조선 제2초급학교. 이 학교 어머니회 2대 회장을 역임한 김영자 씨(82)는 모임이 결성된 경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학교 수업참관일에 한 어머니가 학교를 돕고 싶다면 우리도 일본학교처럼 바자회라도 해볼까?’라고 했던 말이 계기가 되었죠. 그럼 한 번 해보자고 했고, 그 후론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학교를 돕고 싶은 마음은 다들 똑같았으니까.”

바자회를 개최하는 주체로서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어머니들 모임=어머니회가 결성된 것이 당시를 알고 있는 김씨의 기억이다.

바자회는 같은 해 11월에 개최되었다. “음식은 호르몬 숯불구이랑 국수, 오뎅도 있었고. 꽃이나 장식품도 직접 만들었지. 여하튼 온갖 것을 만들었죠. 젊은 어머니들이 지혜를 짜내 열심히 해주었던 걸로 기억해요.”(김씨


이 때의 바자회 수익으로 통학버스를 구입해 학교에 기증했다. 바자회는 그 후에도 이 학교 어머니들이 주최하는 정례 활동으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언젠가 개장탕(보신탕)을 만들어 바자회에 낸 적이 있는데, 전혀 팔리지 않았어요. 다음 해부터 다시는 만들지 않았죠.(웃음)” 김영자 씨가 기억하는 바자회의 추억이다. 김씨는 1975~76년까지 2년간 회장을 맡았다. 초창기에는 회장이라는 직책명도 없이 어머니 총책임자라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제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어머니회 활동사진이에요.”라고 말하며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김씨가 회장을 맡은 시기에 기획했던 어머니회 회원들의 조선대학교 방문 사진이다. “당시엔 조선대학교에 대해 잘 모르고, 아는 사람도 있지만 직접 가 본 사람이 적었어요. 앞으로 애들이 진학하게 될 경우를 생각하면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해서 50명 정도 모여서 관광버스를 빌렸죠. 졸업식이 가까웠던 시기라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촬영하고 있었어요. 한덕수 의장도 와계셨고. 당시 교장선생님도 여러 가지로 협력해주었어요. ‘이 아주머니 참 당돌하시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웃음)”


fb74cf51dd51678b0c3c954fecec0ce0_1676445976_4491.jpg 

- 동초(東初) 어머니회 멤버들의 조선대학교 방문 당시(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영자 씨) - 

 

김영자 씨 또한 동초의 전신 중 하나인 히라오카 조선초등학교(194641일 개교)에 입학했는데, 1949년 조선학교 폐쇄령으로 2학년까지 다닐 수밖에 없었다. 4명의 자녀들(22)은 모두 동초를 졸업했다. 큰딸인 조복례 씨(60)도 나중에 이 학교 어머니회 회장을 맡았으니 2대에 걸쳐 어머니회 회장이 된 셈이다.

 

학생들의 조국방문을 기획

김영자 씨의 인터뷰 취재가 있은 며칠 후, 역대회장 4명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왔다. 8대 회장 이영자 씨(84), 9대 회장 서만춘 씨(74), 11대 회장 김의정 씨(77), 12대 회장 정희자 씨(81). 학교 바로 옆에 사는 서씨의 자택에 모두 모여 주셨다.

영자 씨가 회장을 하던 때 학생 수가 400명에 가까웠어요. 당시 바자회 연간 매상이 400만 엔이었는데, 어머니회 역사상 최고액이었을 겁니다. 어머니회 신문도 발행했는데, 신문기사가 완성될 때까지 꼼짝없이 묶여 있었죠. 12시가 되어도 집에 보내주지 않는 거예요. 제일 무서운 회장이었어요.(웃음)” 서씨가 알려준 이영자 씨의 업적이다.

 

기억에 남는 어머니회 활동에 대해 서만춘 씨에게 묻자 아이들의 조국방문을 기획했던 일을 얘기했다. 정희자 씨가 회장, 서만춘 씨가 부회장이었던 1986, 당시 편지교환을 하던 평양에 있는 자매학교 신리인민학교의 학생들이, 전년도에 재일조선학생미술대전에서 입상한 서씨의 아들 박수륭 씨(당시 초2)에게 격려 메시지와 함께 언젠가 평양에서 만나자는 바람을 담은 편지를 보내 왔다. 어머니회는 조국의 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여성동맹 오사카부 본부에서 기획한 조국 단기방문단에 수륭 씨를 참가하게 했다. 서씨는 수륭 씨를 포함한 자신의 아이 5명 모두 데리고 조국방문에 다녀왔다.

 

이듬해인 1987년에는 이 학교 5학년과 6학년 30명의 조국방문을 기획했다. 인솔교원 3명과 어머니회 멤버 2명을 포함해 35명이 조국을 방문해 자매학교와 교류했다. “일본 전국 어느 곳의 어머니회도 하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고, 주위에서는 잘 따라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서씨)”

이씨는 어머니회 활동을 회상하며 다른 어머니들과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이 기뻤다고 한다. 정씨는 그때는 우리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이 당연했고, 어머니회 활동도 열심히 하는 게 당연했다.”라고 말한다.

서만춘 씨는 어머니회가 결성된 것은 당시, 여성동맹이 오사카에서 <학교를 사랑하는 운동>을 전개한 배경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전국에서 최초가 된 근거는

동초 어머니회 전통은 현역 멤버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2022) 4월부터 회장을 맡은 강순애 씨도 동초 출신이다. 어머니 급식, 어머니 페스티벌 등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변화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지혜를 짜내고 있다.”(강씨)

학교 창립 75주년인 작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성대한 창립행사를 하지 못했기에 77주년 때에는 희수(喜壽) 이벤트를 기획하면 어떨까 구상중이라 한다.

 

fb74cf51dd51678b0c3c954fecec0ce0_1676446019_6671.jpg 

- 역대 어머니회 회장들. 오른쪽에서부터 김의정 씨(11), 이영자 씨(8), 서만춘 씨(9), 정희자 씨(12) -  


fb74cf51dd51678b0c3c954fecec0ce0_1676446042_3046.jpg
- 2대 어머니회 회장 김영자 씨(오른쪽), 현 회장 강순애 씨(왼쪽) - 

 

*********

창립 50주년 기념지에는 동초 어머니회가 일본 전국에서 최초로 결성되었다라고 실려 있다. 이번 취재에서 그 근거가 되는 구체적인 문서와 증언 등의 자료를 찾았지만 현시점에서는 찾지 못했다. 25기 졸업생이며 현재 이 학교의 교무주임을 맡고 있는 림학 씨(55)적어도 오사카 부내 학교 중에서 가장 빠른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월간 <이어> 2022년 9월호에서 

법률상담 문의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