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시리즈
발생기의 우리학교 vol.70 (최종회) <교원편> 니시(西)고베 초급학교 김서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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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의 우리학교 vol.70 (최종회)
<교원편> 니시(西)고베 초급학교 김서애 선생님
우리말에 얼을 불어넣고 싶다
니시고베 조선초급학교(이실 교장)에서 5명의 1학년을 맡은 김서애 씨(68)는 교원을 시작한 지 46년째이다. 22세에 조선학교 교단에 선 후 ‘우리말 한길’의 심정으로 46년간을 달려왔다.

‘선생님, 있잖아요…’
고베시 나가타(長田)지역에 있는 니시고베 초급학교는 1948년에 있은 ‘4·24 한신교육투쟁’ 당시 마지막까지 학교를 지켜낸 ‘성지’로 알려져 있다. 김서애 씨가 조선대학교 사범교육학부를 졸업한 1977년에 교사로 부임한 첫 학교로, ‘15년 동안 말단 교원’이었다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선생님, 있잖아요…” 김 선생님이 맡은 이 학교의 1학년들은 선생님에게 일기를 쓰는 것이 일과다. 엄마와 상점에 갔던 이야기, 축구 시합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아쉬움, 형제와 싸웠던 휴일의 이야기…. 배운지 얼마 안 된 단어가 한 자 한 자 눈부시다. 맞춤법이 틀린 곳도 귀엽기만 하다.
‘유실이는 뼈가 부러졌지만 (축구 시합에서 열심히 뛴 것은) 훌륭합니다’라고 친구를 칭찬하는 부분에는 김 선생님이 빨간 볼펜으로 선을 긋고 감상을 적어 놓는다. 노트에는 아이들의 작은 발견을 놓치지 않는 ‘작은 감동’이 교차하고 있다. 교실에는 배운 어휘를 활용하기 위해 우리말 단어가 곳곳에 장식되어 있어 모음과 자음이 춤을 추는 듯하다.
아기 볼이 부드러워요, 어떻게? → 노글노글
이것저것 보아요, 어떻게? → 두루두루
아이들이 즐거워할 것 같아 20여 년 전에 만든 의성의태어 교재도 활용하고, 사전을 찾으며 단어 리스트를 만들었던 날들을 그리워했다. 오른쪽 창문에는 러시아 민화 그림책 ‘장갑’의 복사본이 빼곡히 붙어있다. 일본어 문장 아래 우리말이 덧붙여 있기에 물어보니 코로나 상황에 온라인으로 계속 우리말을 읽고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름하여 ‘귀로 읽는 리딩’이다.
“학부모들은 재일 3세이고, 아이들은 4세, 5세인 시대다. 가정에서 우리말로 대화하는 것을 그다지 기대할 수 없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집에서 우리말을 할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 이처럼 가볍게 쓸 수 있는 단어로 하루를 시작해보자는 요청도 김 선생님이 오랫동안 해온 노력이다. 연극이나 일상생활에 적용해온 실천 가운데 하나이며, 가볍게 제안해 매일 쓸 수 있는 우리말을 위해 꾸준하고 작은 도전을 계속해 왔다.
- 김 선생님의 교실에는 수많은 우리말 단어가 장식되어 있다 -
17회를 맞이한 <저학년 구연 발표회>
2022년 11월 25일, 고베 조선초중급학교에서는 효고현에 있는 1, 2, 3학년 약 100명이 한 자리에 모여 <저학년 구연 발표회>가 열렸다. 올해로 17회째를 맞는 이벤트로 김 선생님이 힘을 기울여 온 행사 중 하나다. 귀여운 꼬마들의 이야기와 예술 선전을 보여준다. 김 선생님이 담임인 1학년 남학생 3명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만담 <우리는 4·24의 아들들>을 당당히 보여줬다.
“난 니시고베 조선초급학교 1학년 안숭온, 안숭온! 받침이 없다면 ‘아수오!’”

1학년들은 ‘딸’을 ‘탈’로, ‘자다’를 ‘차다’, ‘짜다’처럼 발음을 틀리면서 웃음을 끌어내는 배우로 변신! 사회를 맡은 김 선생님은 “모두의 발표를 즐기며 들어 보자요, 큰 박수도 치자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지루해할 때는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남에게 평가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겁게 말하고 즐기면서 듣는다. 저학년이 그런 경험을 하길 바란다.”라며 김 선생님은 말한다. 작문 지도와 더불어 구연 발표도 우리말 교육의 ‘두 바퀴’로서 계속해 왔다.
3세로 태어나
김서애 선생님은 1954년 4월 15일에 니시노미야(西宮) 시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3세다. 일본학교 출신의 부모님과 ‘일본인처럼 살고 있던’ 어느 날, 총련 지부위원장의 권유로 초급 2학년부터 한신 조선초급학교로 전학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1세 어른들을 본 것도 조선학교에 들어온 후였다고 한다.
“제가 들어간 아마가사키(尼ヶ崎) 조선초중급학교에서는 천병호 선생님(후에 니시고베 초중급학교 교장)의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수업 도중에 ‘광고’같은 것도 했죠. 수업이 놀이 같았어요. 이옥례 선생, 허대길 선생, 이상원 선생…. 인격을 겸비한 선생님들에게 배움으로써 교원에 대한 꿈이 커졌습니다.”
고베 조고, 조선대학교를 거쳐 니시고베 초급학교로 부임했다. 2년 후에 결혼하고 함께 살았던 시어머니는 우리말 네이티브 1세였다. 초급부 교원을 12년간 맡은 후에는 유치원 교원이 부족해 유아교육 현장에도 뛰어들었다(주임).
1992년에는 신천지라고 할 아카이시(明石) 초급학교에 부임한다. 은사인 천병호 선생님에게 ‘진짜 민족성을 얻으려면 명절을 활용하라’라는 가르침을 받고 화전놀이(삼질맞이)를 비롯해 ‘조선의 풍습’을 수업에 활용했다. 47세에 부임한 세이방(西播) 초중급학교에서는 37명의 학생이 있는 반을 담임했다. 효고현의 국어지도위원회의 중책을 맡아 현 전체의 우리말 실력 향상에도 힘을 기울이는 나날이었다. 조국(북)에서 받은 강습은 대체할 수 없는 가르침을 얻은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2012년에 다시 부임한 니시고베 초급학교는 중급부가 없어졌지만 ‘동네 학교’로서 건재했다. “제자의 아이, 손자를 가르칠 정도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생각하는 건 우리말의 구절에는 우리 민족이 배양해 온 얼이 깃들어 있다는 것. 우리말에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아이들의 정서가 확실히 성장한다는 것. ‘간밧데(がんばって)’라는 일본말과 ‘힘내, 기운 내’라는 우리말이 다르듯이 조선학교에서 가꾼 정서는 지식과 다릅니다. 우리말을 배우고 말하는 일상이 축적됨으로써 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마음이 키워집니다. 그렇기에 우리학교인 것입니다.”
2022년 3월, 20대부터 계속해 써온 만담, 예술 선전 대본, 아이들의 작문을 묶은 <구연 대본집>을 자비로 출판했다. 우리말이 서투른 아이도 생각해서 만든 노래인 ‘가갸표의 노래’(1996년)를 비롯해 추억이 가득 담긴 책이다. ‘후배 교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라며 수줍게 말했다.
“언어는 써야만 연마된다. 그리고 우리말을 쓰는 장소는 우리학교 밖에 없다. 그만큼 소중한 장소라는 의식을 동포사회 전체에 공유하고 싶다. 동포사회, 조국이 동포들의 의식에서 멀어지는 현실도 있지만, 우리말을 할 수 있으면서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동포가 가볍게 찾아올 수 있는, 열려있는 학교이길 바란다. 학교로 모이자고 호소하고 싶다.”
“46년의 교원 생활 중에 만난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부지런하지 못한 제게 배움의 장을 맡겨준 교원이라는 일에 감사하고, 이끌어 주신 선배,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
죽는 날까지 민족교육에 종사해 나가고자 하는 김 선생님의 심정이 느껴졌다.
* 월간 <이어> 2023년 1월호에서
** Vol.70을 마지막으로 본 연재가 마무리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