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봅시다

조선적 동포 문제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입국문제

조선적(朝鮮籍)은 오랫동안 우리의 머리 속에 있어 본 적 없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재일동포에게 있어 이 적 籍은 참 오래동안 아픈 표식입니다.

 

해방을 맞은 재일조선인은 모두 아직 일본 국적이었습니다. 조국은 해방되었으나 여전히 연합국의 입장에서 재일조선인은 일본국적인 ‘적국민’ 이었던 셈입니다. 이 국적을 유지한 채 맞이한 1947년, 당시 일본을 점령 중이던 연합군총사령부 (GHQ 사령관 맥아더)는 일본정부를 내세워 조선사람을 ‘조선적 朝鮮籍’ 으로 분류합니다. ‘외국인등록령’이었습니다. 일본국적과 조선적을 같이 보유했으니 좋았을까요? 정반대였습니다.


외국인등록증 소지를 의무화했고 법령을 어기는 일을 하면 추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 사상이 만연하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추방되거나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귀국을 위해, 조국의 말을 배우고 익히고자 만들었던 ‘조선학교’는 조선사람들이 ‘일본국적’ 즉 ‘일본국민’이기에 독자적인 학교를 만들 수 없다며 ‘폐쇄’하라고 합니다. 실제 목적은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였지만 그 피해는 당시 재일동포의 가장 영향력있는 조직이었던 ‘재일조선인연합’(조련)과 조선학교가 받은 것입니다. 1949년 폐쇄령을 내리고 군화발로 짓밟으며 조선학교를 폐쇄합니다. 그리고 그 조선학교 앞에 ‘공립’ ‘도립’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일본 교장, 선생님을 파견해 관리했습니다. 때로는 일본인, 때로는 외국인 취급을 하며 규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파악한 것입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어 점령군이 일본에서 물러나 일본은 정부를 독자적으로 운용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일본은 꼴 보기 싫은 조선인에게 눈을 돌립니다. 이번에는 일본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합니다. 그래서 모든 조선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일본국적을 박탈당하고 언제라도 추방될 수 있는 ‘조선적’ 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의 국적만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1947년 ‘조선적’으로 분류될 당시에 한반도에는 ‘국가’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분단 전 ‘조선’으로 명명한 것입니다. 1952년 일본국적을 완전 박탈당할 때는 조국이 분단과 전쟁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당시 60만 재일조선인의 외국인등록증의 국적란에 기록되었던 ‘조선’ 즉 ‘조선적(朝鮮籍) 소유 동포들은 현재 35만명의 재일조선인 중 10% 정도인 약 3만 5천명이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원래는 전부 ‘조선적’ 이었는데 왜 지금 이렇게 줄어들었을까요?


‘조선적’은 일본정부에서 부여한 일방적인 기호이자 표식일 뿐 실질적인 국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외국인등록증에 ‘대한민국’이라고 표기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했습니다. 물론 법적 효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조선’과 같이 ‘한국’이라는 표기는 단지 표기일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재일조선인들은 민족교육을 지원하고 재일동포를 국적불문하고 ‘공민’으로 인정하는 북에 깊은 감사를 느꼈고 북이나 남이나 일본과는 ‘국교’가 없으니 국적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십 수년이 흘렀습니다. 1965년 한일조약이 체결되어 한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면서 양측은 ‘대한민국 국적’ 신청을 하는 자에게 영주권을 부여한다는 조약을 발표합니다. 당연히 이는 당시 가장 큰 동포 단체인 ‘재일조선인총연합’(총련)의 심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하층의 빈곤한 삶, 멸시받는 존재였던 재일조선인에게 ‘영주권’은 안정된 삶의 보장이었습니다. 이른바 협정 영주권이었습니다. (이 제도는 1995년을 기해 없어졌으며 특별영주권으로 전화되었음. 이 때는 ‘조선적’도 세대를 이어 정주할 수 있는 ‘특별영주권’을 얻게 되었음)


이 과정에서 협정영주권이 또 다른 재일조선인 분열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쪽(총련)과 영주권을 획득해야 생활이 편해진다는 쪽(민단)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고 그 동안 총련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었던 민단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재일조선인의 분단이 가속화된 가슴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3만 5천여명, 이 숫자가 2018년 현재 일본정부가 발표한 ‘조선적’ 보유 재일동포의 인구입니다.


2017년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재일동포의 자유왕래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비록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2018년에 들어 재일조선인 중 조선적 동포들은 차츰 고향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입국이 그만큼 쉬워졌습니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조선적 = 북한국적’ 이라는 등식으로 조선적 동포들을 대해 왔습니다. 체제경쟁과 적대시 정책이 한참일 때는 조선적을 없애고 모두 한국국적으로 변경시키기 위해 많은 강요와 압박이 있었습니다. 특히 외교부가 총괄하는 영관의 횡포가 심했습니다. 국내입국을 위한 여권발급 권한이 영사관에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적 동포들에게는 처음 한 두 번 입국을 허락하면서 ‘한국 국적 변경’을 요구합니다. 다시 고향의 친척들과 만나고 싶거든 국적을 변경하라는 겁니다. 춧불 정권이 들어서기 전 10년 동안은 아예 입국자체를 불허하는 방식으로 변했습니다. 온갖 불쾌한 말들을 내 뱉는 영사관의 태도에 아예 고향 입국을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신청 수가 급감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국대사관에서 조선학교의 한국국적 학부모들에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조선학교의 북한 수학여행은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임으로 입국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라는 취지의 협박성 편지였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당시의 학부모 중에는 실제로 북으로의 수학여행을 포기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지난 정권들은 단순히 한국국적 늘이기에 전념했을 뿐 아니라, 조선학교 안의 한국국적과 조선적 동포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조선적 동포들은 고향인 한국 입국을 위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이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0조(외국거주 동포의 출입보장)에 근거한 것으로 여권법 제14조 제1항에 따른 것입니다. 여행증명서는 원래 여권 분실 시에 발급하며 1회에 한해 입국할 수 있고 유효기간도 3개월 등 단기간입니다. ‘북한국적’ 또는 ‘무국적 재외동포’ 등으로 분류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조치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선적’ 동포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다름 아닌 우리나라 법무부가 해석한 문서가 있습니다. 2010년, 조선적으로서 한국 국적 남편과 서울에서 살고 있던 리정애 씨는 여행증명서조차 발급해 주지 않아 일본의 친정에도 갈 수 없고, 한국에서 신용카드는 커녕 도서카드 조차 만들지 못하는 불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국적 난민과를 찾았습니다. 소위 배우자 비자 (F2 비자)를 받아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조선적으로 한국 땅에 사는 것이 외국인으로서 한국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 보다 더 서러운 현실을 타개해 보자는 의도였습니다. 외교부 영사과에서도 ‘조선적’이 무국적이라는 것을 끝없이 강조하며 한국적 변경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국적자로서 배우자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법률 검토에 들어간 법무부는 의외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남조선과도정부 법률 제11호 조선인을 부친으로 하여 출생한 자는 조선의 국적을 가진다.), <제헌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써 정한다), <헌법>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서 한다.), 등 관련 규정을 종합 검토할 때 재일조선인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음.


신청인의 출생 당시 국적법 (1963. 법률 제1409호) 제2조 제1호 (출생한 당시에 부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 에 의하더라도 신청인은 재일조선인을 부로 하여 태어난 자이므로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자임이 자명함.”


한마디로 ‘조선적은 우리국민’ 이라는 겁니다. 결국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무국적’ 또는 ‘외국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었으나 ‘우리 국민’임을 법적으로 인정받은 리정애 씨는 한편으로 기뻤지만, 이러한 법무부 해석을 들고 외교부를 찾아 정식 여권을 요구했으나 역시 외교부는 완고했습니다. 여전히 한국여권을 줄 수 없다는 겁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이제 ‘조선적’ 동포들은 한국입국이 거부되는 사례가 극히 줄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조선적 동포들은 실질적인 우리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북한 주민을 향해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오고 싶을 때 자유롭게 올 수 있고 살고자 선택했을 때 고국의 품에서 부럼없이 살 수 있는 권리. 국민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입니다. 이제 조선적 동포들도 우리 국민으로 품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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