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몽당연필의 발자취를 담았습니다.

청년교류 '우리또래' 8기 in 와카야마, 잘 다녀왔습니다 (9/5-7)

2026-09-23
청년교류 '우리또래' 8기 in 와카야마 (9/5-7)

9월 5일부터 7일, 2박 3일간 일본 와카야마에서 청년 30명이 만나 교류했습니다.

이번 우리또래 8기는 와까야마조선초중급학교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요 활동으로는 학교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 지역 동포와의 간담회, 토론, 수업참관 입니다.


조선학교의 역사와 의미를 배우고, 학교 곳곳을 보살피는 활동을 하는 시간동안 와까야마 우리학교에 대한 애정이 피어났습니다. 

서로 모르고 살아온 시간에 비해 훨씬 짧은 3일이었음에도 같이 우리말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울고 웃었던 추억이 깊어진 만큼 끈끈함도 깊어졌습니다. 서로를 모르고 지내던 우리들은 우리학교를 함께 지켜갈 동무가 되었습니다. 


다시 만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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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후기>


2026년 9월5일부터 7일까지의 3일동안 날씨가 좋지 못했다. 그런데 확실히 말할수 있는것은 그 3일동안 여기 와까야마는 전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바람이 불었고 사랑에 차넘친 곳이였다. ... 

우리또래에는 <만남>이 있었다.

우리또래에는 <민족>이 있었다.

우리또래에는 <눈물>이 있었다.

우리또래에는 <사랑>이 있었다.

벌써 그리워진 우리 또래들.

보고싶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 못한 말이 너무도 많다.

인생을 살다보고 그토록 시계바늘이 멈추기를 바란적이 없었다. 그토록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란적이 없었다.

내 소원은 어느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후회는 없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며 열심히 통일을 앞당겨오겠다.

보고싶은 누나,형,동급생,동생들이 찾아와주기를 바라는게 아니라 내가 찾아갈수 있게.

모두다 무슨 일을 해도, 어디에서 살아도, 여기 와까야마에서 맺은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자.

아직 보지 못한 우리의 또래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는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과 용기를 줄것이다.

제9기 우리또래는 와까야마에서 다시 개최되였으면 좋겠는데 아직 못 본 우리또래 찾으러 다른곳을 찾아가는것도 좋을것같다.

영원하여라 우리또래.



학교를 가꾸는 일에 참여했던 둘째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교보재들을 옮기고, 바닥과 선반을 쓸고 닦는 만큼 학교에 애정이 생겼다. 깨끗해진 학교 바닥에 다같이 널부러져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었다. 동무들은 조선학교 출신이 아님에도 열심히 해주어서 고마웠다 말했지만,  조선학교 출신이 아닌 우리에게 지금까지 소중하게 지켜온 학교 문을 흔쾌히 열어준것이 더 고마웠다. 모두를 믿어주고, 마음을 내준것이 더 고마웠다.

나는 어느쪽 사람? 너는 어느쪽 사람? 이라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또래 동무 중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으면 목청껏 응원해주고, 함께 춤추는 것! 그래서 둘째날도 광란의 가라오케 시즌 2로 마무리했다.



항상 속상한 것이 있었다. 한국에서 ‘조선학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몇 안 되는데, 그 몇 안 되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눠 보면 조선학교와 재일동포사회가 아주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보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돕고 함께 꿈꾸며 자라나는 아이들, 때로는 가까운 친구처럼 때로는 든든한 어른처럼 함께하는 선생님들, 학교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지역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다른 동포들. 한국 사회가 잊고 있던, 혹은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이 이 곳의 공동체에는 있다는 걸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교원 선생님들을 비롯한 동포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생각은 더 공고해졌다. 저마다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단단하게 자기 축을 세우고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 좌담회에서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갖고 자라날 수 있는 환경에서 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기도 했다.



참가전까지는 불안도 많았는데 참가해보니까 모두가  친절하고 따뜻해서 아무렇지 않는 이야기부터 깊은 이야기까지 마음놓고 이야기할수가 있었다.

직접 만나야, 이야기해야 통하고 서로를 깊이 알수 있다고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학교를 다니거나 일본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우리 학교를 아는 사람은 없었고 나자신도 우리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이 무서운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조선사람으로서, 우리 학교를 지켜나가야할 사람으로서 고민하는것들 등등을 이야기할수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속에서 이번에 우리또래에 참가해서 많은 분들을 만나서 우선은 우리의 뿌리는 같고 재일조선인인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이렇게도 많다고 느낄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학교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것은 우리 재일동포뿐이 아니라는것을 실감할수 있었고 앞으로도 내가 조선사람으로서 고민할때 나를 알아주고 우리를 알아주는 믿음직한 동무가 생긴것같아서 기뻤고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재일동포외에도 많은 분들이 우리 학교를 소중히 사랑해주시는만큼 우리 학교를 다닌 내가 우리 학교를 누구보다도, 지금보다 더욱더 사랑하고 지켜나가야겠다고 느낄수가 있었다.



... 우리 학교를 위해 지저분한 곳을 청소하고 힘든 작업에도 열성껏 나서준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고맙고 고마운 존재로 느껴졌다. 그 고마운 마음이 커질수록 ‘왜 이렇게까지 함께해주는것일까’하는 의문도 커져갔다. 그런데 그런 나의 의문을 풀어준것은 누군가가 해준 대답이나 말이 아니였다. 우리 학교를 위해 함께 땀을 흘린 시간들, 우리 학교를 앞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함께 고민한 시간들, 그리고 우리가 친구로서 함께 보낸 시간들속에서 나는 그 답을 자연스럽게 찾을수 있었다. 같은 피줄을 이은 우리가 서로를 리해하는속에 정이 생기고 우리의 모습을 통해 우리 학교를 더 알고, 또 우리 학교를 더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서로의 사이를 깊여갈수록 우리또래를 통해 만난 소중한 사람들이 나에게 우리 학교가 얼마나 귀중한 곳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누구나 매혹되고 사랑할수 있는 그런 우리 학교를 앞으로도 꾸려가고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좌담회를 통해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김00어머님께서 네 자녀를 우리학교에 보내시는 마음을 들으면서,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 나를 우리학교에 보내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의 마음과 사랑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 순간, 한국어 발음 때문에 한순간에 그 꿈이 무너져 버렸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재일동포로 살아가며 어려움과 억울함, 슬픔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또래에 참가하면서 ‘나에게는 우리 동포들이 있고, 함께하는 동무들이 있구나’라는 것을 다시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보낸 시간들, 그리고 우리또래에서 느꼈던 따뜻한 마음과 즐거웠던 추억들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에게는 몽당연필 분들, 동포들 그리고 동무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 이번 우리또래에서 받은 마음과 용기를 잊지 않고, 다시 한 번 열심히 노력하여 내 꿈을 이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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