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카야마 조선학교 운동회 참가 후기
조선학교라는 명칭을 처음 접하고 ‘이건 뭐지, 웬 조선?’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몽당연필에 후원을 시작하면서 함께 시작된 ‘조선학교는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는 여정은 이번 활동에 참여를 결심하면서 더 심화되었습니다. 몽당연필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와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조선학교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는데, 광복과 그때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한반도 분단 이후 남북 대결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에 관한 꼼꼼한 공부가 필요한 주제였습니다. 제가 이해한 조선학교는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일본 정부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일본에서 살아가야 했던 조선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조선은 사라졌지만, 남북은 존재하기 전, 그 짧은 시기에 조선어 교육기관을 모태로 시작된 재일 동포들의 학교, 그래서 조선학교라는 이름으로 현재에도 살아남아 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조선학교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이 학교를 왜 ‘우리 학교’라고 부르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학교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이번 운동회에 주저 없이 참가하게 된 것은 제가 가진 교육과 학교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짧게 나마 중학교 교사로 근무해본 나름 교육자로서 어린 학생들이 정말 좋은 환경에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교육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발대의 보고서에서 확인한 조선학교의 시설 상황은 정말 가슴 아프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했습니다. 교사의 절대 숫자도 너무나 부족해 보였습니다. 한국학교의 교육 환경을 잘 알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넘어가 조선학교를 처음 마주했습니다. 이 곳은 분명 2026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30년 전과 비슷하다고 하면 어느 정도 느낌 전달이 될까요? 실제로는 50년 전쯤 지어진 건물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요즘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환경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고 이런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 그리고 그런 학교에 자식들을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할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운동회에 참가하는 동안 다른 생각들이 교차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설이 조금 누추하고 천장에서 비가 조금 새더라도 이 곳의 교육은 그 어떤 곳의 교육보다 가치 있구나. 그리고 이 곳 학생들이 대안으로 선택할 일본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학생들만을 위한 행사가 아님을 증명하듯이 학부모와 졸업생들의 참가를 위해 운동회는 일요일에 진행되었습니다. 28명의 학생은 서로가 서로에게 형, 누나, 동생이 되어주고 교사들은 그런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활동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를 먼저 졸업한 선배이자 학부모인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들이 모든 아이를 자신의 아이와 똑같이 보살피고 응원하는 광경은 조선시대 어느 마을 잔치가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공동체의 유대를 바탕으로 한 정겨운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정겨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리 생경할까 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어느샌가 대부분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막연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이 행복한 모습에 일부가 될 수 있어서 함께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운동회가 학생들에게는 그 어떤 활동보다도 뜻깊고 따뜻한 경험으로 남을 것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최상의 환경으로 손꼽히는 한국학교의 운동회에서는 이런 최상의 교육 경험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요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교육에 결핍된 많은 것들이 여기 와카야마 조선학교 운동장에 가득한 것 같아 마음이 복잡 해졌습니다. 한나절 운동회를 보고 조선학교의 모든 교육활동을 논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공동체의 교육이라면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그 본질을 잘 유지한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운동회는 그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서 학부모, 졸업생, 교사까지 더해진 재일동포들의 소속감을 다지는 축제임을 깨달았고 조선학교가 재일동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일본에 있는 ‘우리 학교’. 한민족의 정이 흘러넘치는 그 학교. 기원과 역사, 그로 인해 이 학교가 가진 상징을 직접 목격하고 이해한 지금, 영화 제목이기도 한 ‘우리 학교’라는 이 명칭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음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조선학교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과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다시금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약하나마 이에 도움이 되기 위해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공을 국시로 하던 시절이 지났지만, 북한과 관련되면 아직도 조금 뜨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시점에 살아있는 의미로 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일본에 합병되었다가 광복되었던 역사 속의 국가라는 의미보다는 북조선, 북한과 연결됩니다. 실재로 조선학교의 과거와 현재도 북한의 지원을 빼놓고 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를 조국으로 여기는 재일동포들의 교육 지원에 남북의 구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마땅히 할 일을 해 온 반면 한국은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남북의 대결 구도가 무의미해진 지금, 한국은 미뤄두었던 숙제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제는 학생의 대부분이 한국 국적인 조선학교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조선학교에서는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옆에 있는 일본학교보다 더욱 멋진 환경에서 학생들이 교육받기를 희망해봅니다. 이 과정에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닌 재일동포들과 그들의 구심점인 이곳 조선학교에서 시작된 남북 협력의 물결이 온 한반도에 넘쳐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로 이어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조선학교와 함께할 몽당연필의 모든 구성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카야마 조선학교 운동회 참가 후기
조선학교라는 명칭을 처음 접하고 ‘이건 뭐지, 웬 조선?’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몽당연필에 후원을 시작하면서 함께 시작된 ‘조선학교는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는 여정은 이번 활동에 참여를 결심하면서 더 심화되었습니다. 몽당연필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와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조선학교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는데, 광복과 그때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한반도 분단 이후 남북 대결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에 관한 꼼꼼한 공부가 필요한 주제였습니다. 제가 이해한 조선학교는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일본 정부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일본에서 살아가야 했던 조선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조선은 사라졌지만, 남북은 존재하기 전, 그 짧은 시기에 조선어 교육기관을 모태로 시작된 재일 동포들의 학교, 그래서 조선학교라는 이름으로 현재에도 살아남아 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조선학교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이 학교를 왜 ‘우리 학교’라고 부르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학교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이번 운동회에 주저 없이 참가하게 된 것은 제가 가진 교육과 학교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짧게 나마 중학교 교사로 근무해본 나름 교육자로서 어린 학생들이 정말 좋은 환경에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교육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발대의 보고서에서 확인한 조선학교의 시설 상황은 정말 가슴 아프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했습니다. 교사의 절대 숫자도 너무나 부족해 보였습니다. 한국학교의 교육 환경을 잘 알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넘어가 조선학교를 처음 마주했습니다. 이 곳은 분명 2026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30년 전과 비슷하다고 하면 어느 정도 느낌 전달이 될까요? 실제로는 50년 전쯤 지어진 건물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요즘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환경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고 이런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 그리고 그런 학교에 자식들을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할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운동회에 참가하는 동안 다른 생각들이 교차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설이 조금 누추하고 천장에서 비가 조금 새더라도 이 곳의 교육은 그 어떤 곳의 교육보다 가치 있구나. 그리고 이 곳 학생들이 대안으로 선택할 일본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학생들만을 위한 행사가 아님을 증명하듯이 학부모와 졸업생들의 참가를 위해 운동회는 일요일에 진행되었습니다. 28명의 학생은 서로가 서로에게 형, 누나, 동생이 되어주고 교사들은 그런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활동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를 먼저 졸업한 선배이자 학부모인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들이 모든 아이를 자신의 아이와 똑같이 보살피고 응원하는 광경은 조선시대 어느 마을 잔치가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공동체의 유대를 바탕으로 한 정겨운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정겨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리 생경할까 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어느샌가 대부분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막연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이 행복한 모습에 일부가 될 수 있어서 함께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운동회가 학생들에게는 그 어떤 활동보다도 뜻깊고 따뜻한 경험으로 남을 것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최상의 환경으로 손꼽히는 한국학교의 운동회에서는 이런 최상의 교육 경험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요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교육에 결핍된 많은 것들이 여기 와카야마 조선학교 운동장에 가득한 것 같아 마음이 복잡 해졌습니다. 한나절 운동회를 보고 조선학교의 모든 교육활동을 논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공동체의 교육이라면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그 본질을 잘 유지한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운동회는 그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서 학부모, 졸업생, 교사까지 더해진 재일동포들의 소속감을 다지는 축제임을 깨달았고 조선학교가 재일동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일본에 있는 ‘우리 학교’. 한민족의 정이 흘러넘치는 그 학교. 기원과 역사, 그로 인해 이 학교가 가진 상징을 직접 목격하고 이해한 지금, 영화 제목이기도 한 ‘우리 학교’라는 이 명칭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음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조선학교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과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다시금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약하나마 이에 도움이 되기 위해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공을 국시로 하던 시절이 지났지만, 북한과 관련되면 아직도 조금 뜨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시점에 살아있는 의미로 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일본에 합병되었다가 광복되었던 역사 속의 국가라는 의미보다는 북조선, 북한과 연결됩니다. 실재로 조선학교의 과거와 현재도 북한의 지원을 빼놓고 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를 조국으로 여기는 재일동포들의 교육 지원에 남북의 구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마땅히 할 일을 해 온 반면 한국은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남북의 대결 구도가 무의미해진 지금, 한국은 미뤄두었던 숙제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제는 학생의 대부분이 한국 국적인 조선학교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조선학교에서는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옆에 있는 일본학교보다 더욱 멋진 환경에서 학생들이 교육받기를 희망해봅니다. 이 과정에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닌 재일동포들과 그들의 구심점인 이곳 조선학교에서 시작된 남북 협력의 물결이 온 한반도에 넘쳐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로 이어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조선학교와 함께할 몽당연필의 모든 구성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