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시코쿠조선학교 서포터즈가 되었을까?”
몽당연필 회원이 된 지 이제 1년 가까이 되었고, 노래 소모임 ‘가그린’에 합류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회원이 된 이상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2025년 후원주점에서 서빙 파트로 참여했고, 매월 가그린 모임을 통해 조선학교에 대한 노래들을 배우고 부르면서 가사에 담겨 있는 조선학교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습니다.
노래는 노래일 뿐이라며 그저 부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며 가사에 담긴 정서와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뻐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지요. “통학길이 멀다고 어머니는 걱정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는 조선사람~”
노래를 부르면서 ‘왜 조선사람이라고 표현했을까?’ 의문이 들었지요. 몽당연필 회원이 되기 전에는 재일동포라는 말이 익숙했던지라 노래 가사에 학생들을 조선사람으로 표현한 것이 처음에는 생소했습니다. 그래서...

2026년, 몽당연필의 노래 소모임에 불과(?)한 가그린이 <마음모아 힘모아 프로젝트>의 4개 학교 중 시코쿠 우리학교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그린 대단한데?’ ‘노래 말고 무엇인가 다른 할 일이 생기겠군’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과 만만찮은 경비가 들어가는 서포터즈 활동, 10월 ‘소풍’ 행사에 가그린이 전원 참여하기로 결의한 터라, 일단 ‘소풍’ 행사에 집중하려 계획했으나, 선발대로 다녀온 회원들의 소식을 함께 나누면서 급히 이번 서포터즈 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도 출발 1주일을 남긴 상황에서...
일본 방문 자체가 처음이고, 거기다 조선학교를 처음 접하는 상황이라 살짝 긴장하며 8월 29일 시코쿠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1시간여 비행 끝에 도착한 마쓰야마 공항까지 선생님들이 환대로 맞아주셨고, 우리가 활동해야 할 시코쿠학교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1일차 활동은 운동장 및 교사 주변 잡초 제거 및 정리.
그동안 교류는 자주 하였으나 학교에 직접 방문하여 활동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들었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학교 모습을 직접 마주하니 웃자란 잡초들이 ‘잘 왔어. 시코쿠는 처음이지?’ 하며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고, ‘할 일이 많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잽싸게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 주변 잡초들과 나무 전지작업을 했지요. 8월의 한국 날씨도 매우 무덥지만, 마쓰야마의 8월은 더 무더웠습니다. 게다가 실내가 아닌 사방이 뻥 뚫린 운동장에서의 작업은 상상 이상의 고난도 작업. 이런 일을 언제 해봤나 까마득할 정도의 육체노동으로 인하여 작업을 시작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거의 탈진 상태. 50대의 나이가 원망스러웠지요.
그래도 잡초들이 제거되면서 깨끗해지는 운동장을 보며 서로 으쌰으쌰!
1일 차 작업을 마치고 깨끗해진 운동장과 교사(校舍) 주변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회원들.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던, 함께 작업하신 시코쿠학교 선생님들. 평소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대규모 작업이라 선생님들은 아마 더 기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운동장 한쪽에 있는 시원한 지하수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생명수였습니다. 꼭 체험해 봐야 할 코스!!
저녁에는 동포,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하며 학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80년이 넘는 학교의 역사 속에 100명 넘는 학생들이 재학 중이던 적도 있지만(기숙사도 운영할 정도였답니다), 지금은 일곱 명의 학생과 네 분의 전임교사들이 민족교육에 힘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수업들은 자기 시간을 쪼개어 헌신해 주는 분들도 계셨습니다(일본인 목사님께서 영어 수업을 하시기도).
그동안 다른 단체와 교류도 해왔지만, 이번처럼 직접 학교를 방문했던 교류 활동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서포터즈 활동이 몽당연필에게도 중요하지만, 우리학교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조선학교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고, 왜 학생들이 조선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왜 바다 건너 한국에 있는 우리가 조선학교를 기억하고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왜 노래 가사에서 학생들을 ‘조선사람’이라고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감동 포인트가 있습니다. 시코쿠학교에는 시코쿠 출신의 교원 충원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운 학교 여건이지만 타 지역에서 나고 자란 초년(24~27세) 선생님들께서 낯선 시코쿠로 오셔서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아이들 교육과 학교 사무를 위해 헌신하고 계십니다. 정말 감동의 물결이~~. 어쩌면 이 선생님들의 모습이 조선학교의 미래와 조선학교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2일 차 활동은 옥상 정리 및 교실 정리.
옥상 정리 작업은 운동장 작업 난이도를 뛰어넘는 뙤약볕 아래의 작업이며, 게다가 생명수 같던 지하수는 꿈도 꾸지 못할 곳이라 단단히 복장을 챙기고 작업에 나섰습니다. 낙엽, 나뭇가지, 먼지, 모래들로 뒤엉킨 옥상 바닥과 배수구 주변을 치우는 작업은 첫날보다 더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남성 서포터즈들이 옥상에서 작업하는 동안 여성 서포터즈들은 1~3층을 오르내리며 그동안 버리지 못했던 물품들을 정리했습니다. 이 작업도 매우 힘든 작업이었겠지요. 참! 2일 차에는 대규모(?) 지원군이 오셨습니다.
학생들과 부모님, 조선학교와 협력하는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이 합류해 더 활기차고 즐겁게 일했습니다. 귀여운 시코쿠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감동적인 날이었지요. 인원이 늘어나 예상보다 이날 작업은 비교적 빨리 끝났습니다. 지저분했던 옥상도 깨끗이 정리가 되었고, 그동안 쌓여있던 교실들의 오래된 흔적들을 지우며 교실도 반짝반짝 윤이 났습니다.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은 “우와~~~ 반짝반짝!!! 고맙습니다!”를 연발하셨습니다. 우리 서포터즈들의 마음도 더욱 흐뭇흐뭇, 감사 감사!
최종 정리를 마치고 그늘이 드리운 운동장에 모여 학교 측이 성대하게 준비해 주신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전날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고,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의 이야기도 듣고, 가그린의 특별 공연(?) 후 이어지는 교류 시간은 이틀에 걸친 서포터즈 활동을 정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서두에 “나는 왜 시코쿠 조선초중급학교 서포터즈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몽당연필과 노래를 통해 만났고, 노래 가사를 통해 조선학교가 궁금해졌고, 머리와 마음만으로 생각하던 조선학교에 가보고 싶었습니다”란 답을 달아 봅니다. ‘열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게 낫다’라는 말이 어디에 있지 않나요? 몽당연필 12년여의 교류 활동 중 처음 시작한 ‘마음모아 힘모아 프로젝트’에, 10년 넘게 활동한 회원들도 해 보지 못한 경험을 갓 1년도 되지 않은 제가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습니다. 늦게 시작했으나 누구보다 가까이 조선학교를 알고 느꼈던 이 프로젝트는 50년 넘는 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4개 학교를 시작으로 더 많은 학교로 확대되도록 마음과 정성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할 일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학교 식당 바닥도 손 봐야 하고, 벗겨진 벽면 페인트도 새로 칠해야 하고, 무엇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학생들 자주 만나야 하고….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시간 있는 사람은 시간으로! 각자 십시일반으로 함께하면 못 할 일이 없겠지요. 아직도 망설이는 회원이 계신다면 서포터즈 활동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몽당연필 회원이라면 꼭 한 번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가그린도 많이 응원해 주시고, 조선학교 노래를 불러보고 싶은 회원님들의 많은 가입을 기다립니다.
몽당연필 회원님들, 서포터즈 활동이 궁금하시면 함께 하시죠? 무한 감동 보장합니다. ^^
몽당연필 아자아자! 조선학교 아자아자! 마음모아 힘모아 아자아자! 가그린 아자아자!
“나는 왜 시코쿠조선학교 서포터즈가 되었을까?”
몽당연필 회원이 된 지 이제 1년 가까이 되었고, 노래 소모임 ‘가그린’에 합류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회원이 된 이상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2025년 후원주점에서 서빙 파트로 참여했고, 매월 가그린 모임을 통해 조선학교에 대한 노래들을 배우고 부르면서 가사에 담겨 있는 조선학교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습니다.
노래는 노래일 뿐이라며 그저 부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며 가사에 담긴 정서와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뻐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지요. “통학길이 멀다고 어머니는 걱정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는 조선사람~”
노래를 부르면서 ‘왜 조선사람이라고 표현했을까?’ 의문이 들었지요. 몽당연필 회원이 되기 전에는 재일동포라는 말이 익숙했던지라 노래 가사에 학생들을 조선사람으로 표현한 것이 처음에는 생소했습니다. 그래서...
2026년, 몽당연필의 노래 소모임에 불과(?)한 가그린이 <마음모아 힘모아 프로젝트>의 4개 학교 중 시코쿠 우리학교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그린 대단한데?’ ‘노래 말고 무엇인가 다른 할 일이 생기겠군’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과 만만찮은 경비가 들어가는 서포터즈 활동, 10월 ‘소풍’ 행사에 가그린이 전원 참여하기로 결의한 터라, 일단 ‘소풍’ 행사에 집중하려 계획했으나, 선발대로 다녀온 회원들의 소식을 함께 나누면서 급히 이번 서포터즈 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도 출발 1주일을 남긴 상황에서...
일본 방문 자체가 처음이고, 거기다 조선학교를 처음 접하는 상황이라 살짝 긴장하며 8월 29일 시코쿠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1시간여 비행 끝에 도착한 마쓰야마 공항까지 선생님들이 환대로 맞아주셨고, 우리가 활동해야 할 시코쿠학교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1일차 활동은 운동장 및 교사 주변 잡초 제거 및 정리.
그동안 교류는 자주 하였으나 학교에 직접 방문하여 활동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들었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학교 모습을 직접 마주하니 웃자란 잡초들이 ‘잘 왔어. 시코쿠는 처음이지?’ 하며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고, ‘할 일이 많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잽싸게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 주변 잡초들과 나무 전지작업을 했지요. 8월의 한국 날씨도 매우 무덥지만, 마쓰야마의 8월은 더 무더웠습니다. 게다가 실내가 아닌 사방이 뻥 뚫린 운동장에서의 작업은 상상 이상의 고난도 작업. 이런 일을 언제 해봤나 까마득할 정도의 육체노동으로 인하여 작업을 시작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거의 탈진 상태. 50대의 나이가 원망스러웠지요.
그래도 잡초들이 제거되면서 깨끗해지는 운동장을 보며 서로 으쌰으쌰!
1일 차 작업을 마치고 깨끗해진 운동장과 교사(校舍) 주변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회원들.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던, 함께 작업하신 시코쿠학교 선생님들. 평소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대규모 작업이라 선생님들은 아마 더 기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운동장 한쪽에 있는 시원한 지하수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생명수였습니다. 꼭 체험해 봐야 할 코스!!
저녁에는 동포,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하며 학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80년이 넘는 학교의 역사 속에 100명 넘는 학생들이 재학 중이던 적도 있지만(기숙사도 운영할 정도였답니다), 지금은 일곱 명의 학생과 네 분의 전임교사들이 민족교육에 힘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수업들은 자기 시간을 쪼개어 헌신해 주는 분들도 계셨습니다(일본인 목사님께서 영어 수업을 하시기도).
그동안 다른 단체와 교류도 해왔지만, 이번처럼 직접 학교를 방문했던 교류 활동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서포터즈 활동이 몽당연필에게도 중요하지만, 우리학교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조선학교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고, 왜 학생들이 조선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왜 바다 건너 한국에 있는 우리가 조선학교를 기억하고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왜 노래 가사에서 학생들을 ‘조선사람’이라고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감동 포인트가 있습니다. 시코쿠학교에는 시코쿠 출신의 교원 충원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운 학교 여건이지만 타 지역에서 나고 자란 초년(24~27세) 선생님들께서 낯선 시코쿠로 오셔서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아이들 교육과 학교 사무를 위해 헌신하고 계십니다. 정말 감동의 물결이~~. 어쩌면 이 선생님들의 모습이 조선학교의 미래와 조선학교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2일 차 활동은 옥상 정리 및 교실 정리.
옥상 정리 작업은 운동장 작업 난이도를 뛰어넘는 뙤약볕 아래의 작업이며, 게다가 생명수 같던 지하수는 꿈도 꾸지 못할 곳이라 단단히 복장을 챙기고 작업에 나섰습니다. 낙엽, 나뭇가지, 먼지, 모래들로 뒤엉킨 옥상 바닥과 배수구 주변을 치우는 작업은 첫날보다 더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남성 서포터즈들이 옥상에서 작업하는 동안 여성 서포터즈들은 1~3층을 오르내리며 그동안 버리지 못했던 물품들을 정리했습니다. 이 작업도 매우 힘든 작업이었겠지요. 참! 2일 차에는 대규모(?) 지원군이 오셨습니다.
학생들과 부모님, 조선학교와 협력하는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이 합류해 더 활기차고 즐겁게 일했습니다. 귀여운 시코쿠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감동적인 날이었지요. 인원이 늘어나 예상보다 이날 작업은 비교적 빨리 끝났습니다. 지저분했던 옥상도 깨끗이 정리가 되었고, 그동안 쌓여있던 교실들의 오래된 흔적들을 지우며 교실도 반짝반짝 윤이 났습니다.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은 “우와~~~ 반짝반짝!!! 고맙습니다!”를 연발하셨습니다. 우리 서포터즈들의 마음도 더욱 흐뭇흐뭇, 감사 감사!
최종 정리를 마치고 그늘이 드리운 운동장에 모여 학교 측이 성대하게 준비해 주신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전날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고,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의 이야기도 듣고, 가그린의 특별 공연(?) 후 이어지는 교류 시간은 이틀에 걸친 서포터즈 활동을 정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서두에 “나는 왜 시코쿠 조선초중급학교 서포터즈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몽당연필과 노래를 통해 만났고, 노래 가사를 통해 조선학교가 궁금해졌고, 머리와 마음만으로 생각하던 조선학교에 가보고 싶었습니다”란 답을 달아 봅니다. ‘열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게 낫다’라는 말이 어디에 있지 않나요? 몽당연필 12년여의 교류 활동 중 처음 시작한 ‘마음모아 힘모아 프로젝트’에, 10년 넘게 활동한 회원들도 해 보지 못한 경험을 갓 1년도 되지 않은 제가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습니다. 늦게 시작했으나 누구보다 가까이 조선학교를 알고 느꼈던 이 프로젝트는 50년 넘는 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4개 학교를 시작으로 더 많은 학교로 확대되도록 마음과 정성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할 일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학교 식당 바닥도 손 봐야 하고, 벗겨진 벽면 페인트도 새로 칠해야 하고, 무엇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학생들 자주 만나야 하고….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시간 있는 사람은 시간으로! 각자 십시일반으로 함께하면 못 할 일이 없겠지요. 아직도 망설이는 회원이 계신다면 서포터즈 활동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몽당연필 회원이라면 꼭 한 번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가그린도 많이 응원해 주시고, 조선학교 노래를 불러보고 싶은 회원님들의 많은 가입을 기다립니다.
몽당연필 회원님들, 서포터즈 활동이 궁금하시면 함께 하시죠? 무한 감동 보장합니다. ^^
몽당연필 아자아자! 조선학교 아자아자! 마음모아 힘모아 아자아자! 가그린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