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을 맞은 조선인들은 해방된 민족이었으나 연합군총사령부(GHQ 사령관 맥아더)로부터 승전국 또는 독립된 국가의 국민으로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일본을 점령한 GHQ 입장에서는 조선인들은 여전히 일본국적의 적성국가국민이었습니다.
조선적이 만들어진 계기는 1947년 5월 2일 ‘외국인 등록령’ 때문입니다. 천황의 마지막 칙령이었던 이 외국인 등록령이 발효된 이유는 1947년 5월 3일 대일본제국 헌법이 일본국 헌법으로 전면 개정되어 시행되는데, 이 법의 대상에서 조선인과 대만인을 제외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등록령으로 일본내지의 호적과는 별도로 식민지 조선의 호적에 등록된 조선인들은 외국인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본내 조선인들은 국적란에 모두 “조선”으로 표기하였는데요, 이는 식민지 조선출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과거 조선왕조의 조선도 아니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조선도 아닙니다.
일본정부도 '구 조선호적등재자 및 그 자손 가운데 외국인등록상의 국적표시를 아직 대한민국으로 변경하지 않은 사람'(일본국적자 제외)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GHQ는 조선적 재일동포들을 한편으로는 외국인, 한편으로는 일본국민으로 취급했습니다.
해방 후 국어강습소를 시작으로 우리말을 배우며 식민지역사를 청산하려는 조선인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일본국민’이기에 독자적인 학교를 만들 수 없다며, 1949년 조선학교들의 ‘폐쇄’를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학교 앞에 ‘공립’ ‘도립’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일본 교장, 선생님을 파견해 관리했습니다. 때로는 일본인, 때로는 외국인 취급을 하며 규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대한 것입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후 일본의 법무부 민사국장 통달 제 438호 “평화조약에 따른 조선인 대만인 등에 관한 국적 및 호적 사무의 처리에 대해서”로 재일조선인들은 일본국적을 상실하고, 외국인등록법에 따라 외국인으로만 취급하게 됩니다.
외국인등록증 소지를 의무화했고 법령을 어기는 일을 하면 추방 되는 등 외국인 등록법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또한 일본국적의 취득은 귀화를 해야만 가능함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당시 재일조선인사회는 북한을 지지하는 좌익세력이 우세하고, 일본 공산당 지도아래 반정부ㆍ반미 투쟁에 가담하였기에 일본정부는 ‘사회불안세력’으로 보고 해방 후 빈곤과 차별 속에 놓여 있던 재일조선인을 언제든 강제퇴거가 가능한 외국인으로 취급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60만 재일조선인의 외국인등록증의 국적란에 기록되었던 ‘조선적(朝鮮籍)’ 동포들은 2018년 현재 약 2만 9천명이 남았습니다.
‘조선적’은 일본정부에서 부여한 일방적인 기호이자 표식일 뿐 실질적인 국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만들어진 남과 북에 의해 ‘조선적’ 또한 분단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남북의 체제경쟁은 일본내에서 재일조선인들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서도 이어졌습니다. 1948년 한반도에는 두 개의 정부가 만들어졌습니다. 남과 북은 국적법을 통해 모두 식민지 시기 조선호적에 등록된 사람을 부친으로 하여 출생한 자는 국민으로 인정하였습니다. 한국정부는 GHQ에 재일조선인들은 유엔이 승인한 대한민국 수립으로 한국국민이 되었으므로 강화조약까지 일본국적을 유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였지만 연합군사령부는 이를 거부하고 강화조약 체결 때까지 재일조선인들은 일본국적을 유지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다만 50년대에 들어서면 국적란에 한국으로 표기가 가능해졌습니다. 재일조선인들은 민족교육을 지원하고 해외 ‘공민’으로 인정하는 북에 깊이 고마워했고, 이 과정에서 귀국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약 9만여명이 영주귀국한 귀국사업(북송사업)은 새로운 이산가족의 형성이었으며, 북에 친척을 둔 동포들은 조선적을 유지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면서 양측은 ‘대한민국 국적’ 신청을 하는 자에게 영주권을 부여한다고 발표합니다. 이른바 협정 영주자격이었습니다. 이는 북을 지지하는 ‘재일조선인총연합’(총련)의 심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하층의 빈곤한 삶, 멸시받는 존재였던 재일조선인에게 ‘영주권’은 안정된 삶의 보장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협정영주권이 또 다른 재일조선인 분열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쪽(총련)과 영주권을 획득해야 생활이 편해진다는 쪽(민단)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고 이는 재일조선인의 분단이 가속화되는 가슴 아픈 장면이었습니다.(협정영주자격은 이후 1991년에 특별영주자격으로 바뀌었는데, 이 때는 ‘조선적’도 세대를 이어 정주할 수 있는 ‘특별영주자격’을 얻게 됩니다)
대한민국 국적취득을 둘러 싼 체제 경쟁은 단순한 지명기호였던‘조선적’에 여러 의미가 부여됩니다. 즉, 남과 북 어느 한쪽의 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분단자체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이를 거부하며 조선적으로 남고자 하는 동포들도 있고,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등 동포들을 외면하지 않은 북을 지지하기에 조선적을 유지하는 동포들도 있습니다. 앞서 북에 친척이 있는 동포들은 북으로 다니기 위해서라도 조선적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구요. 이러한 다양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체제경쟁 속에서 한국정부, 특히 외교부와 재일공관에서는 한국국적으로 변경하지 않는 조선적=북한국적(또는 지지자들)로 취급하게 됩니다.
조선적 동포들의 경우 대부분 고향이 남한임에도 불구하고 고향방문이 어려웠습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때 대규모 방문단을 모집해서 고향방문을 시작하면서 한국으로의 방문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개별적인 자유로운 한국방문은 김대중 정부 시기부터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적 동포들의 경우 한국에 입국하려면 ‘임시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이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 10조, 여권법 제 14조, 여권법 시행령 제16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 10조 | 외국국적을 보유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의 여권을 소지하지 아니한 외국거주 동포가 남한을 왕래하려면 여권법제 14조 1항에 따른 여행증명서를 소지해야 한다. |
| 여권법제 14조 | 외교부장관은 국외 체류 중에 여권을 잃어버린 사람으로서 여권의 발급을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에게 여행목적지가 기재된 여권을 갈음하는 증명서를 발급 할 수 있다. |
| 여권법 시행령 제16조 | 외교부장관은 법 제14조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여행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중략) 5.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제 10조에 따라 여행증명서를 소지하여야 하는 사람으로서 여행증명서를 발급할 필요가 있다고 외교부장관이 인정하는 사람 |
이 여행증명서 발급은 영사관의 재량으로 발급을 거부할 수 있어 조선적 동포들의 입국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동안 영사관에서 여행증명서 발급을 받으려는 동포들에 대한 태도를 보면, 한국국적으로의 변경을 강요하거나 증명서 발급시 취조에 가까운 인터뷰, 고압적인 자세, 과다한 개인정보의 요구 등 심각한 인권침해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국가 인권위원회에서는 재발방지 등의 시정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09진인2583) 조선적에서 한국적으로 변경을 한 한국국적 재일동포들에 대해 의심과 감시의 시선도 여전합니다. 예를 들면 여권 갱신시 여권기간을 제한하거나 아예 여권 발급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전직 국정원 인사의 폭로로 ‘여권발급공작’을 통한 대선개입이 PD수첩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세계인권선언문(1948. 12. 10. 제정) 제13조에는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 영토 안에서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든 살 수 있다. 또한 그 나라를 떠날 권리가 있고, 다시 돌아올 권리도 있다’며 이동권은 기본적인 인권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인권규약 제12조 4항에는, ‘어느 누구도 자국으로 돌아갈 권리를 자의적으로 빼앗지 못한다’고 귀환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고향에,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방문을 왜 이리 차단하는 걸까요? 조선적 동포들의 한국 방문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교류도 있고, 단기간으로 한국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에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재외동포들의 국내 체류시 자격을 정하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국민으로 거주국의 영주자격을 가진 재외국민과 외국국적 동포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적 동포들은 한국국민으로 보지만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법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실상 거주국에서 무국적자에 해당되는 이들도 재외동포법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개정이 필요합니다. 법적 대상으로 명시하고 입국을 보장하고, 입국거부의 사유들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또한 여행증명서 발급 과정에서 인권침해의 요소가 없도록 지침을 개선하고, 담당영사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 등이 필요합니다. 일본제국주의의 강제 병합으로 식민지를 겪으며 형성된 특수한 존재인 조선적 동포들은 일본사회에서 온갖 차별과 냉대를 감수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그들 스스로의 결정을 존중하며 조선적 동포들의 역사를 포용하는 자세로 실질적인 개선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 1922 | 민적법 폐지, 조선호적령 공포 |
| 1945.11.03 | 연합군총사령부(GHQ) “조선인은 해방국민으로 취급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적국민으로 취급할 수 있다” |
| 1945.11.05 | 연합군총사령부(GHQ) “조선에 귀국하지 않는 조선인은 적법하게 성립된 한국정부가 그들에 대해 한국국민으로 승인할 때까지 일본국적을 보유한자로 간주한다” |
| 1946 | 본국(조선)으로 귀환한 비일본인 재입국 금지 |
| 1947.05.02 | 일본정부 외국인등록령 – 천황의 마지막 칙령 국적란에 “조선”으로 기재, 재일동포를 외지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규정 |
| 1948.12 | 대한민국 국적법, 재일조선인도 국민으로 간주 |
| 1949.10 | 교육과 관련해서는 일본국민이라 간주하여 조선학교 폐쇄령 |
| 1950 | 대한민국거류민단, 일본정부에 외국인등록시 “대한민국”으로 통일 요청 (본인 의사에 따라 수정 가능) |
| 1952.04.28 |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발효 직후 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 법무부 민사국장 통달 제 438호 “평화조약에 다른 조선인 대만인 등에 관한 국적 및 호적 사무의 처리에 대해서” 같은 날 외국인등록법 시행, 51년도 출입국관리령 법률 126호 제2조 6항: 재류자격 및 재류기간이 결정되기까지 재류자격 연장하지 않아도 재류 |
| 1965.06.22 | 한일국교정상화 _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일본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日本国に居住する大韓民国国民の法的地位 及び待遇に関する日本国と大韓民国との間の協定」) 협정영주자격: ⒜ 1945년 8월 15일 이전부터의 거주자와 ⒝ 그 직계비속 / 법적지위 협정 발효일부터 5년 이내 출생자 ⒞ / 협정 발효 5년 이후에 출생한 ⒜와⒝의 자식 1대까지 대한민국 국적 신청자만 해당, 조선적 제외 한일협정 당시에는 양국 정부 모두 조선적·한국국적자 모두 일본으로 귀화하여 소멸될 것으로 상정함 |
| 1991.11.01 | “일본국과의 평화 조약에 따라 일본 국적을 이탈한 자들의 출입국 관리에 관한 특례법” |
*식민지 조선인 :대외적으로는 일본신민, 그러나 일본국의 국적법 적용이 아님
*호적 :조선호적과 일본 내지 호적의 분리(전후 조선인배제 기준으로 사용)
*“평화조약 국적이탈자” 1. 1945년 9월 2일 이전부터 계속일본에 체류하는 자, 2. 1945년 9월 3일부터 평화조약 발효일(1952년 4월 28일)까지의 기간에 일본에서 출생하고 그 후 계속 일본에 체류하는 자_이에 따라 조선적 동포들도 특별영주자격 취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