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온 나의 뿌리>
장학생 정00
2021년 5월 25일, 나는 태어난 지 21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나의 나라.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나의 뿌리가 있는 나라를 찾아왔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3개월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이후에는 한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한국에 오면서 다시 한번 ‘정체성의 고민’이라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2023년 나는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이 시작하기 전에 주민등록을 하려고 주민센터로 간 날, 직원이 서류를 확인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호적에 있는 본적지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주소네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말은 마치 내 고향이 사라졌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한국에 오면 나의 뿌리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나에게 그 말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일본에서 재일동포를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뿌리 없는 풀”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뿌리를 찾으러 왔는데, 그 뿌리가 이미 땅 위에서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 후로 나는 종종 서류 한 장 앞에서 나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
행정 서류를 제출하거나, 국가장학금을 신청할 때마다 직원에게
“저는 일본에서 온 재일동포입니다.”
라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한국 국적인데 왜 가족들 주민등록 번호가 없어요?”
“아버님이 조선국적이면 장학금은 못 받아요.”
그 순간마다 나는 여전히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한국인이면서도 ‘특별한 케이스’로 분류되는 현실이, 나를 다시 경계선 위로 밀어내는 듯했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았고, 한국말로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완전히 ‘나’를 이해해 주는 시선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야만 이해받을 수 있는 현실이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
나와 같은 재일동포들이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저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누군가의 시선에 나를 맞추기보다,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뿌리가 땅속에 깊이 박혀 있지 않아도, 바람을 따라 새로운 곳에서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뿌리 없는 풀’이 아니라 ‘어디서든 자랄 수 있는 풀’로 살아가는 용기를 주었다.
지금 나는 한국과 일본, 두 세계를 오가며 살아간다. 그 경계 위에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만큼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재일동포로 산다는 것은, 단지 이중적인 정체성을 감당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를 잇는 다리로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 두 세계를 잇는 다리 위에서 나는 오늘도 서 있다. 이 경계선은 더 이상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두 문화를 잇는 가능성의 자리다.
그리고 나는 그 위에서, 나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바람 따라 온 나의 뿌리>
장학생 정00
2021년 5월 25일, 나는 태어난 지 21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나의 나라.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나의 뿌리가 있는 나라를 찾아왔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3개월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이후에는 한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한국에 오면서 다시 한번 ‘정체성의 고민’이라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2023년 나는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이 시작하기 전에 주민등록을 하려고 주민센터로 간 날, 직원이 서류를 확인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호적에 있는 본적지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주소네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말은 마치 내 고향이 사라졌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한국에 오면 나의 뿌리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나에게 그 말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일본에서 재일동포를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뿌리 없는 풀”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뿌리를 찾으러 왔는데, 그 뿌리가 이미 땅 위에서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 후로 나는 종종 서류 한 장 앞에서 나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
행정 서류를 제출하거나, 국가장학금을 신청할 때마다 직원에게
“저는 일본에서 온 재일동포입니다.”
라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한국 국적인데 왜 가족들 주민등록 번호가 없어요?”
“아버님이 조선국적이면 장학금은 못 받아요.”
그 순간마다 나는 여전히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한국인이면서도 ‘특별한 케이스’로 분류되는 현실이, 나를 다시 경계선 위로 밀어내는 듯했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았고, 한국말로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완전히 ‘나’를 이해해 주는 시선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야만 이해받을 수 있는 현실이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
나와 같은 재일동포들이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저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누군가의 시선에 나를 맞추기보다,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뿌리가 땅속에 깊이 박혀 있지 않아도, 바람을 따라 새로운 곳에서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뿌리 없는 풀’이 아니라 ‘어디서든 자랄 수 있는 풀’로 살아가는 용기를 주었다.
지금 나는 한국과 일본, 두 세계를 오가며 살아간다. 그 경계 위에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만큼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재일동포로 산다는 것은, 단지 이중적인 정체성을 감당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를 잇는 다리로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 두 세계를 잇는 다리 위에서 나는 오늘도 서 있다. 이 경계선은 더 이상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두 문화를 잇는 가능성의 자리다.
그리고 나는 그 위에서, 나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