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장학생 에세이] 한국에서의 유학을 통해 보게 된 ‘재일조선인’이라는 이…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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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유학을 통해 보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이름의 흔들림


정00


나에게는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입니다. 그의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에 나오는 한 문장은 언제나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전환점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은 돌이켜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순간들도 확실히 인생을 바꾼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지요.”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이 구절은 현재와 과거를 돌아볼 때마다 떠오릅니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저의 길에는 여러 세대, 사회의 이야기, 그리고 개인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매일 느꼈던 작은 위화감과 망설임이, 사실은 저를 바꾼 전환점이자 저를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저는 조선학교에서 예민한 시기를 보냈고, 일본 사회 안에서 차별과 라벨링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자이니치’로서 살아가는 답답함이나 열등감, 그리고 매일 겪는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때 공동체와의 연대를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을 자꾸 말하다 보니, 제 이야기가 타인의 연민이나 공감을 불러오는 장치가 되고, 피해자의 모습이 제 내면에 쌓이는 게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단순한 피로감이 아니라, 내 삶을 하나의 고정된 이야기로 굳혀버린다는 위기감, 그리고 여러 정체성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의식이 깊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자의식의 갈등 한가운데서, 저는 다시 이시구로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어떤 실수나 방황도 지금의 나를 만드는 일부다.”

이 말은 제가 걸어온 길과 말하기에 대한 망설임까지도 조용히 인정해주었습니다. 갈등과 모순은 피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만들어가는 데 꼭 필요한 재료이며, 지금의 나를 이루는 고유한 요소라는 생각에 깊은 위안을 느꼈습니다.


한국에 와서 유학을 하며, ‘스파이’, ‘일본인’, ‘한국인’ 등 여러 라벨이 농담처럼 혹은 진지하게 저에게 붙는 일상을 경험했습니다.


이런 말들 뒤에는 분단과 통일, 국적과 디아스포라, 신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민족적 동포주의까지 다양한 사회적·역사적 힘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저에게 던지는 이 라벨들은 단순한 무지나 오해가 아니라, 저를 정의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는 경계를 만들고 질서를 지키려는 사회적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어떤 시선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실감을 갈수록 더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민족성은 아직 결정된 게 아니다. 나는 어느 한쪽이나 이항대립에 쉽게 속하지 않는다.”


답을 쉽게 내리는 대신, ‘조선인’, ‘일본인’, ‘한국인’이라는 기존의 민족적 범주에 맞추어 단정하지 않고, 오히려 정해지지 않음과 복합적이고 겹겹이 쌓인 상태 그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습니다.


저에게 정체성이란, 고정된 무언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되묻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민족성’도 말할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고, 그때그때의 나 또한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은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 뿌리를 가지고, 여러 사회를 오가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이런 유동성과 복합성, 결정되지 않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오히려 이것이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흔들림과 고민의 뒤에는 언제나 조선학교, 재일 커뮤니티, 그리고 먼저 걸어간 분들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들이 마련한 피난처, 여러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적·심리적인 힘이 지금의 저에게는 꼭 필요한 기반입니다.


‘몽당연필’을 비롯해서, 한국에서도 조선학교와 젊은 세대를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깊어집니다. 진심으로 전하는 ‘감사합니다’란 말이, 저에게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민족적 귀속이나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혹은 분단이나 억압, 저항 같은 무거운 역사도 제 일상에서는 더 섬세한 여운이나 작은 감정의 파동으로 다가옵니다. 특별한 드라마나 운명이 아니라, 뜻밖의 친구와의 대화, 문득 찾아오는 소외의 경험, 아무 일 없는 하루에도 정체성의 물음은 늘 작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주변의 정의나 기대를 슬쩍 비켜가며, 그날 그날의 제 답을 찾고, 답이 달라지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 경험들이 쌓이며 제 삶은 “돌이켜보았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중요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제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흔들리고, 모순되고, 여러 가능성을 남겨둔 채, 저는 ‘말하는 것의 불확실함’과 ‘존재 자체의 여러 모습’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삶을 선택했고, 그 여정에서 받은 모든 도움과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직 다 하지 못한 말들은 또 다른 형태로, 조용히 언어에 새겨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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