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을 찾으며
고00
나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자랐다. 집에서는 일본어만 사용했고, 주변의 모든 환경은거의 일본 사회 속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재일교포 3 세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일본사람일까, 한국 사람일까”라는 질문이 늘 내 안에 있었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 곳이 바로 오사카의 한국학교, 건국학교였다. 일본 속 한국학교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한글을 배우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접하며 내 뿌리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학교 축제 때 본 ‘전통예술부’ 공연은 내 인생을 바꾸었다. 사물악기와 함께 울려퍼지는 장단,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에너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나는 ‘연희’라는 세계에 빠져들었고, 자연스럽게 국악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났다. 언젠가 진짜 한국의 무대에서 그 소리를 느껴보고 싶고 내가 그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꿈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 꿈을 따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에 입학했다. 한국으로 유학을 오던 날,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였다. 처음에는 언어와 문화, 생활방식의 차이 때문에 낯설고 외로웠다. ‘외국인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연희를 배우는 순간만큼은 달랐다. 악기를 두드리고 장단에 맞춰 춤을 출 때면, 나는 ‘일본에서 온 학생’이 아니라 ‘한 명의 국악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국악은 나에게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 언어였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작년에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활동지원금을 신청했을 때, 나는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한국 국적을 가진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출신 배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된 것이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지원을 받았는데, 나만이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듯한 깊은 상처였다.
그 경험 이후 나는 ‘재일교포로 산다는 것’의 무게를 더 깊이 깨달았다. 나는 한국에서 예술을 배우며, ‘다름’이 단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제도와 사회의 인식 속에서는 여전히 재일교포가 ‘우리’ 안에 완전히
포함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같은 일을 겪는 예술인이 없도록, 나부터 목소리를 내고 싶다. 예술은 국경을 넘는 언어이고, 국악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숨결이다. 그 아름다움은 결코 출신으로 구분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재일교포로서, 그리고 국악인으로서 경계의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싶다. 내가 겪은 부당한 일들이 후배 세대에게는 단지 “그런 일이 예전에 있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로만 남기를 바란다. 그들이 차별 없이 예술에 몰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한국에서 재일동포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통해 ‘국악’이라는 내 언어를 찾았다.
이제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재일교포이고, 국악을 사랑하는 예술가이며,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예술로, 이 세상의 부당한 리듬을 바꿔나갈 것이다.
나의 예술을 찾으며
고00
나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자랐다. 집에서는 일본어만 사용했고, 주변의 모든 환경은거의 일본 사회 속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재일교포 3 세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일본사람일까, 한국 사람일까”라는 질문이 늘 내 안에 있었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 곳이 바로 오사카의 한국학교, 건국학교였다. 일본 속 한국학교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한글을 배우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접하며 내 뿌리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학교 축제 때 본 ‘전통예술부’ 공연은 내 인생을 바꾸었다. 사물악기와 함께 울려퍼지는 장단,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에너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나는 ‘연희’라는 세계에 빠져들었고, 자연스럽게 국악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났다. 언젠가 진짜 한국의 무대에서 그 소리를 느껴보고 싶고 내가 그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꿈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 꿈을 따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에 입학했다. 한국으로 유학을 오던 날,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였다. 처음에는 언어와 문화, 생활방식의 차이 때문에 낯설고 외로웠다. ‘외국인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연희를 배우는 순간만큼은 달랐다. 악기를 두드리고 장단에 맞춰 춤을 출 때면, 나는 ‘일본에서 온 학생’이 아니라 ‘한 명의 국악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국악은 나에게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 언어였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작년에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활동지원금을 신청했을 때, 나는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한국 국적을 가진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출신 배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된 것이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지원을 받았는데, 나만이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듯한 깊은 상처였다.
그 경험 이후 나는 ‘재일교포로 산다는 것’의 무게를 더 깊이 깨달았다. 나는 한국에서 예술을 배우며, ‘다름’이 단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제도와 사회의 인식 속에서는 여전히 재일교포가 ‘우리’ 안에 완전히
포함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같은 일을 겪는 예술인이 없도록, 나부터 목소리를 내고 싶다. 예술은 국경을 넘는 언어이고, 국악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숨결이다. 그 아름다움은 결코 출신으로 구분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재일교포로서, 그리고 국악인으로서 경계의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싶다. 내가 겪은 부당한 일들이 후배 세대에게는 단지 “그런 일이 예전에 있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로만 남기를 바란다. 그들이 차별 없이 예술에 몰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한국에서 재일동포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통해 ‘국악’이라는 내 언어를 찾았다.
이제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재일교포이고, 국악을 사랑하는 예술가이며,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예술로, 이 세상의 부당한 리듬을 바꿔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