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라기(茨城) 조선학교의 뿌리는 1945년 해방 직후 재일동포 1세들이 세운 국어강습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6년 2월 세키모토(関本) 초등학원과 야타베(谷田部) 초등학원이 개교한 것을 시작으로, 1947년까지 이바라기(茨城) 현내 각지에 22개의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1949년 일본 정부의 '조선인학교 폐쇄령'으로 인해 현내 7개 학교가 강제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동포 학생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해 일본학교로 편입시키려 했지만 동포들은 끝까지 집단 편입을 주장했습니다. 동포들은 포기하지 않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워 미토(水戸), 히타치(日立), 츠치우라(土浦) 등의 일본 공립학교 내에 방과 후 '민족학급'을 설치하고 조선인 교사를 채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1953년 5월의 조사에 따르면 이바라기 현 내 10곳의 일본 공립학교에 민족학급이 설립되어 274명의 학생이 공부했습니다. 1967년 이바라기 조선중고급학교에 초급부가 병설될 때까지 오랜 기간 동안 민족학급이 유지되었습니다.
히타치 지역에서는 제대로 된 교실이 없는 상황에서 시청 부지에 책상을 놓고 야외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파란하늘 교실(청공 교실)' 형태로 교육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이런 동포들의 의지에 밀려 시 당국은 해안가에 교육 장소를 제공하여 민족교육이 계속 존속하는 것을 묵인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53년 4월 15일, 폐쇄되었던 츠치우라(土浦)의 교사를 보수해 17명의 학생과 7명의 교원으로 지금의 전신인 '이바라기(茨城) 조선중학교'를 창립하게 됩니다. 1955년 4월 고급부를 병설하여 '이바라기 조선중고급학교'가 되었으며 각종학교 인가를 취득하였습니다. 1959년에는 동포들의 헌신적인 모금으로 현재 위치인 미토시(水戸市) 센바쵸(千波町)로 학교를 이전해 목조 교사와 기숙사를 준공했습니다.
1962년 2월 초 '출입국관리법 및 외국인등록법 위반'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기동대를 포함한 약 200여 명에 달하는 경찰의 부당한 강제수색이 있었습니다. 동포들은 거세게 항의했으나 3월 1일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마저 발생하여 교사와 기숙사가 전소되는 비극이 겹쳤습니다. 그러나 동포들은 이러한 연속된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단결하여, 같은 해 8월 17일에 2층짜리 신교사를 새롭게 준공하며 시련을 극복해 냈습니다.
이후 이바라기 학교는 1967년 4월에 초급부를 병설하여 현재의 '이바라기 조선초중고급학교'가 되었으며, 2013년 학교 창립 60주년을 맞아 '이바라기 민족교육 역사자료실'을 교내에 개설했습니다. 2023년에는 학교 창립 70주년을 맞았습니다.

